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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가 불인하다는데? (노자 5장)

by 이제월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 道德經 第五章


“천지는 어질지 않아서 만물을 추구처럼 여기고, 성인은 어질지 않아서 백성을 추구처럼 여긴다.”

— 도덕경 제5 장



芻狗(추구)는 제사 때 쓰는 개 인형인데,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런 보존 가치가 없는 것을 가리키는 거죠.


천지는 신격화나 의인화를 겪지 않은 신성, 자연의 이치, 우주의 운영원리 같은 겁니다.

나중에 천-하늘에 대한 인격화가 가속하지만, 그때에도 비인격화와 인격화의 긴장은 유지됩니다.

노자의 도덕경을 읽으면서 굳이 노자가 천지를 무어라 하는가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그 전부가 이 거친 붓의 굵은 획에는 다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 붓질은 투박한 듯하지만 소박합니다.

있을 건 정학하게 중심에 두고 있다는 거죠.


아무튼 이 말은 일반의 기대를 배반합니다.

인생사 많은 일들이 억울하거나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할 때 우리는 막연하게

하늘이 알아주겠지, 언젠가 갚음이 있겠지 생각하며 ‘심리적 보상’을 받아 균형을 회복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노자는 이 보상과 회복을 가로막습니다. 찬물을 끼얹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아프라고 하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를 내동댕이치는 이야기 같습니다.

천지도 성인도 만물을, 만인을 이따위로 취급한다고?


그러나 잠시 진정하고 생각해 보십시오.

천지가 불인하다는 건, 아무런 사랑도 없다는 게 아니라

가깝고 멂이 있는, 순서가 있는, 차등이 있는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교에서 인(仁)을 말할 때,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이어지는 건

이것이 사랑의 질서, 우선순위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자가 볼 때

이 세상에는 그런 우선순위는 없습니다.

그러한 귀함의 순위, 귀천이 없습니다.


이는 우리의 마음속 모든 기득권을 송두리째 부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득권이 사라진 채로

모두를 똑같이 바라봅니다.


자, 그럼 이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전과 다르게 느끼게 될까요?

이 모든 일은 왜 일어나는 걸까요?

그리고 결국 무엇이 더 올바른 걸까요?

사실에 가까운 것은 무엇이고

더 합당한 것은 무엇일까요?

보다 단순하게 묻자면,

그대는 어느 쪽을 원하고

무엇이 그대의 추구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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