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하나. 희망의 원리는

Hey Ram!

by 이제월



희망은 어디서 오는가?


희망은 먼데서 오는가,

나팔소리처럼?

쨍 하고 깨지는 해처럼 동녘부터 솟아오는가?


희망은 가까이 있는가,

파랑새처럼?

몰랐을 뿐 헤매고 돌아온 눈에 비로소 보이는가?


희망은 이것이고

또 저것이다.

희망은 이런 것이면서

저런 것이기도 하다.


희망은 당신 마음의 움직임.

당신 마음이 기대는 대상이 아니고

당신 마음이 내달려 움켜쥘 대상이 아니고

당신 마음 곤두서 졸이며 기다릴 대상도 아니다.

당신은 희망을 찾을 까닭이 없다.

희망은, 그저 온다.


희망은 샘솟는다.


내재하면서 초월하는 것.


만일 신과 합일하지 못한,

신을 느끼지 못하던 이가

느껴야만 한다면

발견의 순간으로서

신과의 새로운 합일,

오래고 익은, 흩어진 적 없던 합일의 발견은

그렇게 내재하고

초월하는 것.


거기에는 길이 없다.


대도무문(大道無門)

참된 길에 문도 없고 길도 없다.

희망은 그렇게 온다,

와 있다.

깨어 난다,

자고 있다가 자고 있는 이, 당신을 깨운다.


새소리를 들으라.


귀 있으니 귀를 열고 쓰라.

눈 있으니 눈을 뜨고 쓰라.

손 있으니 손을 펼쳐 써라.

혀 있으니 입을 벌려 말하라.

희망은 여기 있다.

지금 왔다.

당신 이미 희망이다.


희망의 원리는 그러므로

인정이다.

있는 그대로의 인정.

사실에 대한 정직함.

정직할 수 있는 용기.

손바닥의 이름이 정직이고

손등의 이름은 용기다.

하나는 잡고 놓으며

하나는 찧고 버틴다.


당신은 그저

이 모든 사실을 겪는다, 안다.

겪지만 겪어서 아는 것이 아니고

받아들이고, 믿음으로써 안다.


상승(上乘)의 믿음은

모르는 것을 용기 내어 믿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굴복(屈伏)하여 바로 아는 것이다.

앞선 믿음은 갸륵하나 하류이고,

평범한 것이다.

뒤난 믿음은 불가사의한 것이고,

이 용기를 낸 이는 자신을 낮추고

비로소 처음으로

평안하다.

자신의 힘이 아닌 줄 알기 때문이고, 그래서 순수하게 희망한다.

Hare Krishna

Hare Krishna

Hare Krishna

Hare, hare, hare Krishna.


I surrender!


Hare Krishna, Hare Rama!

하레 크리슈나, 하레 라마.


마하트마의 마지막 말은

외마디

“Hey, Ram!”이었다. 주여, 혹은 신이시여.


절망이나 포기의 말이 아니라

여전한 희망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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