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공유 | 경우에게

― 백온유 작가 소설 『경우 없는 세계』를 읽고

by 이제월


경우에게



내가 너를 알았을 때 벌써 넌 우릴 떠났었어. 아니, 떠나고서야 만났다고 아쉬워했지. 그런데 아니더라. 너는 한 번은 몸으로 와서 우리가 너를 겪게 했고, 이제 떠난 뒤부터는 언제 어디서나 생각을 일으켜 너를 만나게 찾아와. 이러려고 떠났구나 생각하니 그 사고조차 네가 허락한 것 같아 너는 괜찮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돼.

경우야, 너는 사실 우릴 좀 번거롭게 해. 너를 몰랐더라면 알아보지 못할 일, 더 묻지 않을 일, 결코 하지 않을 일 들을 하고 있어. 그러니까 넌 죽어서야 우릴 일 시키는 거지. 근데 그게 불편하진 않아. 차라리 개운하달까. 땀 좀 더 나고 고민 좀 더 하면, 뭐 어때. 재밌기도 하고 긴장할 때도 있고. 너 이랬던 거야? 힘든 것보다 힘 들어오는 게 더 많구먼, 하며 이해하거나 상상하거나 하기도 해.

아무래도 죽은 사람이 편한 것 같아. 네가 살아 있어도 이렇게 말을 건넬까? 우리가 편하게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몇 마디 하기도 전에 너는 아니겠지만, 내가 일어나서 저쪽 문으로 나가 버렸을지도 모르지. 아닐 수도 있고.

네가 정말 죽어 버리면, 그렇게 느끼면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을거야. 목 마르고. 그런데 아닌 것 같아. 너, 거기 있지? 그렇게 느끼거든. 헷갈리는 건 아냐. 오히려, 분명해져.


너는 어떡할래, 우린 이제 시작했거든.

경우야, 경우 있는 세상 말이야.





읽기를 권해요!

2023년 성북구 한 책 최종후보도서

백온유, 『경우 없는 세계』, 창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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