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는 게 아니라, '보는' 거야.
아이야, 무엇이 보이니?
무서운 영화*를 보게 해서 미안하구나.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그 사슴들, 홍학들
무슨 뜻이죠?
떼 지어 와서 마주보는데 소름끼쳤어요.
재앙의 전령 같은 건가?
아이야, 나는 너에게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지.
그러지 말고
사슴은, 홍학은 어때 보였어?
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주인공을 정해서 감정을 이입해.
도둑에게 이입해서 도둑의 눈으로 볼 때면
평소의 신념과 상식에 반해서 도둑의 성공과 안녕을, 경찰의 실패를 간절히 원하지.
화면을 통해 보면서 나도 모르게
사람의 입장으로 보고,
어떤 사람의 입장으로 보지.
편을 들어서 보는 거야.
편견은 나쁜 마음 때문이 아니라
줄거리를 찾아가고, 장면을 따라잡기 위해서
눈앞에 보이는 것을
머릿속에서
내 정신구조 안에도 위치시키어
내 안에서 보기 위해서
편의적으로
시점을 정해서 보는 게지.
대개는 그것으로 충분해.
하지만 좀 더 나아가 보자고.
그들은 더 민감하고, 재앙을 더 느끼지 않을까요?
그건 그들에게 우리를 들씌워서 보는 거네.
일단 그냥 보이는 걸
해석하지 말고
그냥 봐 봐.
주인공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고립된다고 했지?
세상과 단절되고.
사슴들, 홍학들은
떼지어 다녔어요.
혼자가 아니예요. 무리짓고 있어요.
그들은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였니?
아니요.
그럼?
무서워하는 것 같진 않았어요.
단지 빤히 [극중 인물들을] 바라볼 땐,
[화면 너머 시선을 연장해서 닿을 때 느낌이] 나무라는 것 같았어요.
너희가 한 거지? 하는 느낌.
그러고도
너흰 또 왜 그러니 하고 안됐다는 듯한 눈길.
그럼, 영화가 무얼 대비시키고 있는지
더 잘 알 수 있겠구나.
몰랐어요.
나는 이야기 밖에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는 시점을 차용해.
눈을 빌려 오지.
그게 쉬우니까.
뇌는 할 수 있는 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하니까.
비싸잖아.
순수한 당만 먹고 소모하니까.
적당히 믿어 버리고,
아는 셈 치고 넘기는 거야.
그런데 우리가 늘 그렇게 살 순 없어요.
그래, 그럴 뿐이면 공부할 까닭이 없지.
우리가 공부하는 건 다른 압제가 아니라
이 관성과 타성에서 벗어나는 거야.
실제의 이야기, 삶이란 이야기 속에 우리가 있는 건 당연하지만
상상의 이야기, 모든 해석은 결국
실제의 이야기, 사실들을
어떤 진실로서 재구성하는 건데, 이 해석은 필연적으로
비틀기잖니.
그런데 적어도 내가 어떤 왜곡을 이용하는가는 알아야 할 거야.
이렇게 자기로부터 벗어나는 훈련.
그 연습, practice, 헬라어 프락티코스praktikos가
‘실행’이고, 이걸 나중에 ‘이거야말로 지혜에 대한 사랑, 진리에 이르는 길이 아닌가!’ 하며
찬사로서, 칭호로서 필로소피아philosohia라고, ‘철학’(哲學)이라고 옮겨 부른 거지.
다른 종과 구분되는 내적인 활동, 내적인 수고
그게 생각하기이고,
이런 뜻에서는 생각이야말로 진짜 실천이지 않겠니?
자기중심, 인간중심으로부터 벗어나봐.
감각을 뛰어넘어.
감각을 디딤판 삼아서 도움닫기를 하렴.
나이지만 나에게서 벗어나서
나와 전부를 보는 거야.
벗어나기가 익숙해지면
들어가기도 차츰 할 수 있을 거야.
그때,
그때 우리는 이해하기 시작하는 거야.
자유는
외부의 억압과 압제의 문제가 아니야.
스스로 갇힌 데서 풀려나는 거지.
그건 공부하는 거 말고는
희망이 없어.
자기를 바꾸지 않고는, 꾸준히 거듭거듭 탈바꿈하지 않고는
길이 없어.
공부하자.
너를 구하렴, 너한테서.
— 열일곱[세는 나이] 친구와.
*Leave the World Behind. 샘 에스마일Sam Esmail 감독, 에단 호크Ethan Green Hawke, 줄리아 로버츠, 마이할라 해럴드Myha'la Herrold, 케빈 베이컨Kevin Bacon 등 출연.
2023년 넷플릭스를 통해 OTT로 개봉한 이 영화는,
직역하면 <세상을 등지고>, <세상을 뒤에 두고 떠나다> 정도로 제목을 알아들을 수 있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의 세상을 보여 준다.
부정적으로, 고립과 단절이란 재앙에서 벗어나고자
긍정적으로, 해방과 자유를 누려 자기 자신[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하나, 이웃]이 되고자
하는 활동 일체.
그게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