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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월 Mar 22. 2024

길을 좋아하시나요

— 길은 기적의 공간, 젊음은




젊음은 길 위에 산다.


2,30대에 여러 차례 훌쩍 여행을 떠났어요. 무전여행을 떠나면 어느 날은 비를 흠뻑 맞고 고개를 넘는 순간 땡볕에 몸이 마르고 금세 청바지가 땀이 말라 소금꽃이 피기도 했어요. 신기하게도 마음을 내려놓고 이대로 가지 뭐 할 때쯤이면 차도 드물던 길에서 차가 멈추어 가는 데를 물으며 타라고 하곤 하더라고요. 스무 살 첫 무전여행 어느 날 깨닫고는 이후 편안하게 걷던 마음이 떠오릅니다. 그러다 불안이 올라와도 가시질 않을 때 더 이상 스스로가 젊지 않다고 느꼈더랍니다…

가는 데마다 설레고 이상한 인연들에 감사하고

노을과 어둠, 동 트는 데 온몸이 차오르고 배고픔도 잊었는데, 믿음과 경험이 싸우다 이기거나 져서가 아니라 흔들림에, 길에 대한 그리움을 집이 주는 익숙함과 안전이 누를 때에, 어쩌면 더는 슬리퍼를 신고 나섰던 골목을 지나쳐 그대로 걸어 자정 무렵 경기도와 충남의 경계를 지난다거나 있지도 않은 여우소리를 들으며 뜻밖의 장소에서 마주친 빈집과 그 안의 그림을 들여다보다 붙잡는 손길을 느끼며도 뛰지 않고 걸어 내려온다거나, 태백시내에 들어서기까지 아무런 경계를 찾을 수 없는 완벽한 어둠 속을 하늘을 걷듯 모든 감각을 잊고 툭툭 걷는다거나 어쩌면 이렇게 맛없을 수 있냐며 밥 얻어먹다가 말고 큰소리로 웃는다거나 자꾸만 바다에 들어가는 또래 청년을 붙들며 밤을 샌다거나 편도선 수술을 하자던 의사를 뿌리치고 떠난 곳에서 들어서는 순간 목소리가 터져 닷새 넘게 밤새워 떠들고 울고 웃고 한다거나 김해에서 출발해 쉬지 않고 걸어 울산에 이르러 우리 뭐하는 거냐거나 지붕에 초가를 올리고 반딧불을 보며 넋을 잃고 시가 찾아와도 흘려보내는 벅찬 순간을 맞이하거나 전철 중간에 내려 누가 누굴 좋다는 건지 알 수 없는 말에 알아들을 수도 없지만 그냥 안다, 좋은 거다 그러다간 말없이 등만 쓸어 주는 일도 관덕정에서 걸어 조천읍을 지나 여긴 가로등도 없네 하며 성산포에 일출봉 앞까지 다다라 일출을 기다리다 폭우만 즐기고 너랑 나랑 친하지 비에 웃던 일도 그럼 갈까 그대로 어디로 가던 일은 화장실 없는 친구의 집에 들이닥쳐서 더위에 죽겠다며 나가 밤을 새는 일 같은 건 그래 어쩌면 더는 없을 수도 있겠지 하면서


젊음은 길 위에 있구나, 너와 나의 젊음이 거기 서서 집에 들어오지 않고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있겠구나 생각합니다. 누가 너의 말을 들어주었으면. 너를 만나 어느 누가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으면.


나는 다시 길에 나가 길조차 떠나볼까 젊음아 격조했던 너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볼까 목소리룰 기억할 것 같아 듣는 순간 알겠지만 듣는 즉시 낯설고 놀라겠지 네 목소리에 새겨진 다른 무늬에 나는 설렐까 두려울까 미안할까 고마울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서로 남남이라고 깨닫고 하지만 슬픔에도 기쁨을 느끼고 헤어질지도 몰라


머리가 하얘지며 좋은 건 고맙다는 마음이 잡초처럼 자라 끝내 찾을 수 있다는 것 어느 농부도 민들레를 전부 뽑지 못하니까 땅은 본래 그들의 것인 것처럼


당신은 길을 사랑하나요?

일상이 우연을 안아 빚어지는 그러니까 기적

그런 위험천만한 것도 사랑하시는가요

길을 좋아하시나요?


젊음은 길 위에 살아요

당신이 젊거나 늙는 게 아니라

같이 살거나 헤어지는 거예요


길을

사랑하는가요,

감히?

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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