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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월 Mar 08. 2024

드로잉에 대하여

— 절대적으로 비전문적인.



드로잉에 관해 생각하면

언뜻 미술전공자의 일, 업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drawing은

‘선을 긋다’는 뜻에 앞서서

‘끌어당기’고, ‘이끌고’, ‘끌어내는’ 행위들을 모두 가리킨다.

그것을 길을 내는 일인데

그저 상상만 하지 않고

내 머릿속이 아닌 이곳, 나-라는 정신뿐 아니라

다른 정신들이 공유하는 곳 즉, 감각세계 일반에

내놓는 행위 일체이며,


타자의 정신이 내게로 오도록 인도하는 작은 불빛들을 놓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오롯하게

감각으로.


직접적 정신을 자극하는 상징의 언어, 개념과 지시로서가 아니라

내가 겪고 품은 것을

상대도 감지하고 어쩌면 같은 것을

어쩌면 다른 것을 감지하도록

기회의 문을 여는 것.


즉, 세계 자체를 추가하고 가공하는 일이다.


내가 그린 드로잉은 엽서 반만한 크기일지라도

실제로 내가 드로잉해 낸 것, 변형한 것은

세계 자체다.


이 세계에 대한 특별한 참여.

이것이 예술이고,

우리들 대개가

훈련 없이도 발을 디디는 것 중 하나가 드로잉이다.


물론, 잘하면 아름답다.

더 기쁘고 벅찰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존 러스킨의 드로잉]]을 추천하고 싶다.

첫 발부터 도약하고 날개를 펼 때까지의 경로를

너끈히 안내해 줄 책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선

드로잉이 세계를 변형시킨다면

드로잉을 배우는 최고의 스승은, 궁극의 스승은

자연 자체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과 다른 언어를 쓰지만

또한 더욱 많이 자연의 언어,

장소 안에서 살며, 시간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언어를 같이 쓰고 있다.


그러니까 다시금 인간의 언어로 바꾸려는 시도보다 먼저

자연의 언어를 그대로 듣고 읽어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성찰도 통찰도 미뤄두고


지금 당장은,

그리고 다른 고급의 기술 혹은 더 복잡하고 난해한 것을 해낼 수 있게 되더라도

언제나 언제까지라도

계속해야 할 일은



관찰이다.



알지 못해도 관찰하고

잠깐씩 딴 생각을 하거나

자꾸 놓치며 보더라도

달아나지 말고 자리를 지키며

오감을 집중하기.


관찰하여

감각하고 있는 세계가, 세계의 일부가

내게 고스란히 닿게 하기.


그런 다음 드로잉을 한다.

혹은 드로잉을 하면서 점점 관찰의 기술을 늘린다.


말은 하면서 늘고

걸음마도 계속하며 잘 걷고, 마침내 뛰고 달린다.



그러니까 이 신기하고 대단한 일을 위해 우리는

대단치 않은 것들을, 꾸준히 하면 된다.


누워서 떡 먹기는 몰라도

지금 바로 그리기는,


할 수 있다, 당신.


그러면 나도

당신에게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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