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 — 이야기하기
보여주기와 말하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한 획, 한 점으로 한 점의 그림 되기 어렵듯이
여러 말과 말하기 요소가 결합해
주거니 받거니 오고 가며 이야기되어야 하나의 온전한 말-되기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보여주기와 이야기하기가 알맞는 짝이다.
보여주기는 그리기나 그밖에 무언가 구체물을 만드는 일이다.
행위예술이나 음악도, 건축도, 무술 시범이나 대련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혼자서 기억을 떠올려 회상하는 일도 그렇다.
이야기하기는 보여주기처럼 감각에 소여하는 대신
용어, 낱말과 어구로 그리고 그것들이 맺는 '관계성'
다시 말해 '정신'으로만 이해 가능한 것들, 상상하고 때로 모르는 과거와 모르는 미래, 있지 않은 다른 세계를 가정하여서 비로소 다다를 수 있고, 만져지는 것들의 세계이다.
둘 다 무언가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사실을 재구성하든 느낌과 생각을 담아 전하든 말이다.
그렇지만 더 즉각적인 보여주기는
각자 다르게 인식한다. 다르게 판단하기 앞서 다르게 느끼고, 실제 그렇게 알아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낱말은 다르다.
하나의 해석이 옳다면 다른 해석은 그르다는 소거(消去)가 가능하고, 정의(定義)가 가능하다.
하나의 말은 힘이 달려도 말들이 모여 이야기하면
말하지 않은 것들을
그물이 물고기를 낚아 올리듯
의미를 긷고 실어 나른다.
그렇더라도 둘은 다 필요하다.
하나가 우수하다 말하고 하나에 의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둘 다 세계의 표현이요
인간존재의 펼침이다.
우리는 보여주며 말하기를 다듬고
이야기하며 보여주는 법을 고친다.
때로 이야기가 보이는 것을 바꾸고
보는 것이 듣는 것을 바꾼다.
이즈음 나는 많이 그린다. 거의 날마다 그린다.
어느 날 다시 말할 것이다.
말이 마를 때엔,
한 쪽 다리가 더 뻗지 못할 때엔 다른 쪽 다리를 당겨
다시 둘이 선택하고 나아갈 수 있게 할 따름이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