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월 Jun 14. 2024

민주시민교육의 본질

— 위대함에 대하여

우리는 두 가지를 가르쳐야 한다. 

이 사회가 연속성을 가지고 발전하는 것이 맞다고 여긴다면. 

즉, 민주주의 사회는 꼭 그렇단 것이다. 


첫째, 그들은 시민이어야 한다. 

그들 — 미래의 우리 — 이 시민이라는 것은 

그들이 이 사회의 모든 것에서 ‘왕’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위대하다’. 

위대하다고 정의되어 있고 

위대하다고 간주되며 

그러므로 그들은 언제라도 공무(公務)를 담임(擔任)한다. 할 수 있다. 

그리고 해야 한다. 

위대한 누군가가 필요할 때 우리는 위대한 이를 만나거나 찾거나 기다리는 대신 

우리 자신 위대해야 한다. 

미래의 우리, 그들은 

그래야만 할 때 바로 그러한 일을 해야만 한다. 

위대한 링컨이 위대한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라 

시대의 명 받은 시민은 그가 링컨이건 덩컨이건 

위대한 일’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위대한 일을 해야 한다. 

위대한 건 자리의 무엇함이고, 일의 어떠함이지 

사람이 아니다. 

그들이, 그들 전부건 그들 중 누구건 위대하다면 

그들이 위대한 까닭은 

그 일을 ‘요청받고-응답하기’ 때문이다. 

위대함은 그 대답함, 책임짐(respons-ible) 때문에 위대하다, 

다른 어떤 다름, 속성이 아니라. 


둘째, 이것이 더 중요한데, 그들은 이웃이어야 한다. 

모든 시민은 동료 시민이다. 

왜냐하면 그들 사이의 권리가 동등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역할에 따라 다른 권한을 가질 것이고 

때로 그것은 명령과 복종의 관계마저 지닐 것이다. 

그러나 극히 제한되고, 혼란 없이 명백해야 할 그것들, 

점점 더 그래야만 하는 그것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불분명하고 경계가 번질 것이기에 

우리를 착각에 빠지게 한다. 

나는 더 왕이고, 너는 덜 왕이다 하는 식으로 

또는 거꾸로.

어디로든가 기운다. 


기우는 것(傾度)을 기우는 것(補完)이 

‘서로-이웃-됨’이다. 


그럼으로써 그 어떤 위대한 일도 타락하는 위험에서 

안전띠를 매게 된다. 

그것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할 일이 있고, 계속 변한다. 

계속 깨어 반응한다. 


왕도 정치의 이상을 실천하려 들면 

왕은 극한 직업이요, 불쌍타. 


민주주의를 실현할라치면 

시민은 위험천만한 위대함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이웃을 바라보고, 이웃에게 응답하는 것일 때 

할 만하다. 

그런 세상은 

살 만하다.


그래서, 그 복됨이 최대한이도록 


‘너는 다른 너의 이웃이다’ 하는 사실을 

‘너는 다른 너와 이웃하여라’ 라는 윤리적 명령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때까지 

본보이고, 토론하고, 간곡하게 당부하며 

전하고, 전하고, 전하고, 전하여야 한다. 


전제는, 

다시는 누구도 노예가 되지 않겠다면. 


Or Not. 



이전 17화 어떻게 믿을 것인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