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물거품 같이 읽기-다섯째날

예전에 손 하나 가득

by 이제월



출판된 본문⟫ n.5

예전에 손 하나 가득 안개를 쥐어 보았습니다.

그런 다음 그 손을 펼쳐 보니

오, 안개는 한 마리 벌레로 변해 있지 않겠습니까?

다시 나는 손을 쥐었다 폈습니다.

그 안에 새가 한 마리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한 번 손을 쥐었다 펼쳤을 때,

손바닥 위에는

슬픈 얼굴을 하늘로 향한 채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손을 쥐었다 폈을 때,

그 안에는 다시 한줌 가득 안개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들었습니다.

넘쳐나는 환희의 노래를.



원문⟫

Once I filled my hand with mist.

Then I opened it and lo, the mist was a worm.

And I closed and opened my hand again, and behold there was a bird.

And again I closed and opened my hand, and in its hollow stood a man with a sad face, turned upward.

And again I closed my hand, and when I opened it there was naught but mist.

But I heard a song of exceeding sweetness.



새로 한 번역⟫

옛적에 손에 가득 안개를 채웠습니다

그리고는 펼치니, 보라, 안개가 벌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손을 접었다 펴자, 거기 새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다시 나는 손을 접었다 펼쳤고, 슬픈 얼굴로 위를 우러르며 공허하게 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또다시 손을 접고,

그것을 폈을 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고 안개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뛰어넘는 감미로움을 노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읽기글⟫

지브란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요?

어쩌면 저것은 그가 늘 이야기한 그의 '사랑하는 광인'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이 '탄생'의 이야기는

단순히 안개에서 벌레가, 새가, 사람이 나는 진화를 연상케 하는

점차 자라나는 '(우월해지는) 진보의 역사'로서의 탄생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안개'로 돌아가는 '비움의 역사', 바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그 죽음은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암담한 죽음이 아닙니다.

지브란은 선언합니다.

"나는 분명히 들었습니다. 넘쳐나는 환희의 노래를."


그렇습니다.

모래 물거품의 다섯 번째 글 조각이 들려주는 탄생-죽음의 이야기는

단순히 손쉬운 짝짓기로 꿴 고리가 아니라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고리라 생각합니다.

지브란은 한편 신이 그렇게 하였으리라는 예지도 깔고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예전에' 그리하였을 깊은 내적인 경험을 나누려는 것이 아닐까요?

"너는 누구인가?”(같이 읽기 셋쩨날 참조)라는 물음에 답하려는 '알려는' 노력이

비로소 '사랑하는' 노력으로 바뀌게 되는 그 경계.

새로움의 시작을 위한,

내지는 그 시작을 불러일으키는 위대한 사건으로서의 죽음-이자 탄생.

그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라면?


님의 생각은 어떤가요?



+ >>

성배나 성검, 창이 그리는 직선의 세계 이전
반지나 고리, 뱀(용)이 그리는 원의 세계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진보라는 강박증이 생기기 전
영원무상하고 무한회귀하는 순환의 관점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팎이 하나인
내재하고 동시에 초월하는 시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성자들이 모두 평등을 외치고 발을 씻어 줄 수 있던 건
모두가 하나임을 발견해서입니다.
그것은 갇히는 것이 아니라 환희로운 해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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