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섬으로 데려갈 거야
사실 이녜스 카냐티(Inès Cagnati)의 이 작품의 진짜 제목은 『Génie la folle』(제니 라 폴)로
직역하자면 『미치광이 제니』여야 할 겁니다.
지금은 절판된 이 책은 그래도 어느 도서관 서고에서 발견되곤 할 겁니다.
주제와 사건을 이해한 다음 겪는 커다란 슬픔 말고
이해하여 발생하는 슬픔 말고
그냥 읽는데 문장 문장마다 슬퍼서
‘슬픈 책’ 하면 떠오르는 걸 꼽으라면
저는 오랫동안 언제나 이 작품을 떠올렸습니다.
그냥 자꾸 슬픕니다.
아직 무슨 일인지 모른 채로도 슬픔이 다가옵니다.
책을 손에 들고 있지 않아 실제로 전부 기억하진 않지만
작품의 화자는 딸 마리(Marie)이고,
마리의 엄마 으제니/유제니(Eugénie) 곧, 제니이고
미혼으로 딸 마리를 낳았습니다.
실은 강간으로 인한 임신이었고 딸을 낳아 소중히 키우려 애쓰지만
임신 때문에 집안에서 쫓겨난 뒤
제니는 마을에서 멸시받고 냉대받으며
거의 노예와 같은 삶을 삽니다.
마리는 그런 어머니를 사랑하고 다가가지만 무언가 마음이 잘 닿지 않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알기는 할 터인데
그게 딱 닿아서 전류가 흐르듯 통하지를 않습니다.
마리의 시선에서 어머니를 보고
어머니가 딸을 바라보는 것이 다시 말하여지기를 반복합니다.
미쳐서 미친 게 아니라
묵묵히 인고하며 사는 모양을, 괴롭히고 멸시하느라 ‘미친 제니’라고 모두가 말합니다.
마리의 마음은 이를테면 이런 문장으로 묘사됩니다.
저녁이 되면 종종 엄마는 불가에 앉아 울곤하였다. 그럴때면 엄마의 두 눈은 눈물빛깔을 띠었다. 엄마는 말했다.
"나는, 나는 아무것도 가진게 없어.."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 나를 가졌잖아요."
그러나 엄마는 계속해서 울었다. 그러면 나는 엄마가 나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삶의 매 순간마다 엄마를 사랑하고싶었고, 엄마가 나를 원하도록 가는곳마다 쫒아다녔다.
그러면 엄마는 말했다.
"엄마 뒤만 졸졸 쫒아다니지 마라."
그렇지만 나는, 나는 정말로 엄마를 사랑하고싶었다. 항상 엄마 곁에 머무르고 싶었다.*
침묵으로 가득 찬 얼굴.
어린 시절에 책을 읽으며 그 얼굴을 상상하였습니다.
어디선가 본 것도 같고, 내가 본 중엔 없는 것도 같은 얼굴.
없는 것 같은 얼굴을 상상하는 건 정말 기이한 느낌입니다.
읽는 사람조차 무력과 우울에 빠지게 하는, 그런데도 마르지 않고 계속 흘러
그 물길을 따라 계속해서 읽게 하는 그런 글이었습니다.
마리는 어머니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고 싶어합니다. 거기 가면 — 거기가 어디든 — 행복할 거라고 기대하며.
그리고 마리에게는 피에르(Pierre)가 나타나 사랑을 속삭이고
피에르가 마리에게 계속 말합니다. “파란 섬으로 당신을 데려가겠”다고.
아주 먼곳, 그곳에 푸른 섬들이 있었어요. 모래와 바다와 태양으로 향기롭게 빛나는 섬들이...그의 목소리는 햇빛에 반짝이는 짠 바닷물의 사막과 추운 밤으로 이루어진 사막들을 가로질러 바로 내 곁에 협죽도로 향기로운 섬들을 옮겨다 놓는 것 같았다. 그리고 붉은 꽃들 주위로 몰려든 붉은 새들의 영상과 바닷물이 치솟았다가 깊이 가라앉는 깊은 동굴들의 풍경이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사랑스런 반딧불들이 날아다니는 비단같이 부드럽고 포근한 밤을 실어왔다.
그가 말했다.
"아마도 언젠가, 나는 내가 태어난 그 감미로운 섬으로 당신을 데려가겠어요."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미 그 감미로운 섬과는 너무도 먼곳에 '제니 라 폴'이라 불리는 엄마가 있었고, 의자에 외로이 앉아있는 신부와 거리를 기웃거리고있는 석공이 있었다.*
그러나 피에르는 마리를 데려가지 못합니다.
비행기 사고는 피에르를 누구도 갈 수 없는 섬, 모두에게서 고립된 곳으로 데려가 버립니다.
마리는 마을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송아지가 우물에 빠져 죽고, 기근과 전염병을 겪습니다.
소설은 내내 이 가족의 불행을 보여 줍니다.
모든 불행이 꼬박꼬박 이 가족을 거르지 않고 들러 갑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은 일들이 연속되는 중에
기이하게도, 데려가 줄 피에르가 사라졌고, 불행들이 덮여 마리를 억누르는데
마리는 엄마와 동생에게 희망을 속삭입니다.
그리고 파란 섬에 대한 꿈을 꿉니다.
나는 제발 정말로 누가 마리를 섬으로 데려가 주기를,
모든 불행이 연합해 마리 스스로가 손을 쓸 수 없도록 하였기에
외부에서 어떤 구원이 오기를 희망하였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렇게 간절히 진짜 사람을 구하려는 듯이
발버둥치고 몸부림친 일이 드뭅니다.
냉정한 관찰자이려는 태도가 몸에 배었지만
그게 맞다고 늘 중심을 잡았고, 제법 성공했지만
이 작품은 모든 중립을 뒤흔들었습니다.
기이한 독서 경험으로 자꾸만 떠올렸습니다.
이십여 년이 지나서 나는 그들이 정말로 슬펐고
그 마을과 그 시절, 그 사람들이 정말로 슬펐고
가장 슬퍼야 할 가엾은 이들이
정말로 꿈꾸었고, 꿈꾸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인물은 많은데, 그런 이야기는 많은데 왜….
궁금증이 사그라들지는 않았지만
슬프다는 감정이 아니라
슬픈 감각을 일으키는 작품으로 항상 먼저 떠올립니다.
혹시 도서관에서 『널 섬으로 데려갈 거야』가 생각난다면
책을 찾아 보고, 잠시 기다려 사서로부터 책을 건네 받아 읽기를 바랍니다.
(또는 나중에 다른 출판사에서 『파란 섬의 아이』로 출간된 적도 있을 겁니다.
번역은 크게 다르지 않아 둘 다 좋습니다.)
제니 라 폴은 이해받아야 하고,
마리의 이야기는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이고,
마리의 꿈을, 꺼트리지 않는 일일 것만 같아서입니다.
마리를 피에르가 없고
엄마를 미친년으로 부르는 사람들 속에서만
살지 않게
누군가 한 번씩 들여다 보기를 바랍니다.
休
*책을 찾지 못해서 웹 검색을 통해 일부를 찾아 인용합니다. 자료를 남겨준 인용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https://qoraks44.tistory.com/entry/XFile?utm_source=chatgpt.com [MEMO: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