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진행 중
1950년 6월 25일 새벽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해리 포터 이야기 속에서 마법사들이 볼드모트를 바로 부르지 못하고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로 칭하는 것처럼
우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 정확하게 지칭하길 꺼립니다.
그래서 오랜 동안 단순하게 6・25라고만 불렀습니다.
그리고 6・25 동란, 6・25 사변 같은 말도 썼습니다.
이것을 뚜렷하게 ‘전쟁’이라고 이를테면 ‘6・25 전쟁’으로 부르는 건 드물었습니다.
기이한 일입니다. 그것이 전쟁이란 걸 모두 알고
그 ‘전쟁’을 입에 올리며, 또 “전쟁 때”라고 직접 호칭하기도 하면서도
막상 ‘그 전쟁’을 직접 지칭하여 6・25 전쟁이라고 부르진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영어 사용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1990년대 이후 특히,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Korean War라는 영어 표현을 직역한 ‘한국 전쟁’이 일상화됩니다.
1950년대 당시 외신들은 “The War in Korea”라고 보도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Korean War’가 고유명사로 자리잡습니다.
일부 ‘Korean conflict’라는 표현도 쓰였고요. 전쟁보다 분쟁 정도의 느낌을 주는 말입니다.
“한국에서의 전쟁”이 “한국전쟁”으로 개념지어질 때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을 얻은 걸까요?
휴전 조약 후 수십년이 흘렀지만, 한국전쟁의 성격은 지금도 분명치 않습니다.
그것은 이를 위한 ‘대화’가 부재했기 때문입니다.
6・25는 그것이 무언지 이해하고 해결하기보다는
이리저리 이용되고, 분단과 분열을 지속하는 도구로 소환됐습니다.
한국전쟁의 성격과 발단과 전개, 종말을 한달음에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여전히 새로운 사실이 재발견되고 재조명되고 있고,
전쟁이란 건 굉장히 많은 일들이 복잡하게 얽히기 마련이며
대내외의 여러 정세와도 관련이 있으며
거기 얽힌 개인들의 생애와 명성, 유산으로 전해오는 부와 기득권, 심지어 지배와 피지배 등 수많은 상처가
여전히 새로 도지고 고름이 나는 진행형 상처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정쟁이 시작되고,
더불어 해석 투쟁도 시작됩니다.
한국전쟁은 진행 중인 전쟁입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래서 여전히
하나뿐입니다.
평화를 원한다고.
평화를 목표로 움직이고,
평화의 총량을 계속해서 늘리자고.
전쟁 중인 모두는 전쟁이 끝나기를 바랍니다.
전쟁에서 이긴다, 진다는 건 실은
끝나는 게 이기는 거고,
계속하는 게 지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전쟁도
평화시보다 더 많은 상처를 만들고
낫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이 사회의 전쟁을 어떻게 내면화하고 있나요?
그대와 주변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어떻게 이 전쟁의 상처를 지고 있고
새살이 돋기도 전 또 다른 상처로
당연한 구조처럼, 본래 제 몸처럼 ‘상처’를 안고 있는가요?
들여다보면, 멀찍이서 바라다보면
제법 많은 게 보일 겁니다.
화내지 않아도 화나는 우리에게서.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