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그대의 눈을
출판된 본문⟫ n.62
그대가 그대의 눈을 진정으로 열고 본다면,
그대는 모든 영상들 속에
그대 자신의 영상을 볼 것입니다.
그대가 진정으로 그대의 귀를 열어 듣는다면,
그대는 모든 목소리들 틈에서
그대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원문⟫
Should you really open your eyes and see, you would behold your image in all images.
And should you open your ears and listen, you would hear your own voice in all voices.
새로 한 번역⟫
정말로 그대가 눈을 뜨고 본다면
그대는 모든 상 가운데서 그대의 상도 볼 것입니다
정말로 그대가 귀를 열고 듣는다면
그대는 온갖 소리 가운데서 그대 자신의 목소리도 들을 것입니다
읽기글⟫
이것은 심리적 투사(投射)와는 다릅니다.
여기에는 나남을 가르는 가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실제의 인식이 시작되는,
바로 진정한 이해의 시작이 있습니다.
이 이해를 나는 '인류애', '형제애'로 부르겠습니다.
*
기존 출판된 번역은 ‘상’ 대신 ‘영상’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우리의 이해는 별반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영상”이라는 우리말 표현은 맥락에 따라
자칫 잘못 읽을 수 있습니다. 제가 선택한 “그대의 상”도 잘못 읽힐 수 있는 위험은 여전합니다.
그렇지만 위험을 다 해소하지 못하면서도 이렇게 애써 조금이라도 다른 번역을 시도하는 것은
‘자신’이라는 말이 갖는 귀납적 힘은
‘영상’의 의미를 끌어당겨 영상이 단지 그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히게끔 강제하지만
‘그대의 상’이라고 할 때에는 조사 ‘의’가 ‘그대’와 ‘상’을 강하게 결합해서
여전히 상을 그대의 것, 그대에게 속한 것, 그대에게 되돌려져 그대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힐 여지가 남더라도, 다른 가능성
그러니까, 그대에게서 비롯한 상, 그대 자신의 것, 그대가 소유권과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는, 그대가 권리를 지닌 것으로 생각되는 상이라는 정도로 한 발 물러서 읽힐 수 있는 여지 또한 충분하게 열어 주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바깥 세상을 보면 거기에서 내면 세계, 즉 자기 자신도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읽기보다
세계 자체가 표현하는 것들 속에서
너의 고유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던 것들도 다시금 발견할 것이다, 혹은
혼자 스스로를 고립시켜서 고유한 것이 나오는 게 아니라
바로 세계 안에서 너의 것을, 오롯하게 너에게 돌려질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올바르게 읽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바로 이어지는 문장이 ‘그대 자신의 목소리’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바로 앞에서 시각적 상을, 그러나 망막에 맺힌다기보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상을 가리킬 때에도 그것이 보는 이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라고 추정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둘은 다릅니다.
보는 것은 [보는] 나를 [보고 있는] 거기로 보내는 것이고
듣는 것은 [듣고 있는] 소리가 [듣는] 내 안에 울리는 것, 내게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는 것들 속에서 내 봄을 보는 것은
내 봄 또한 거기서 보이는 것들이라는 것, 그렇게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것이어서
모든 객체가 주체와 관계 맺고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며
반면에 듣는 것들 속에서 나 자신의 소리를 듣는 것은
내 소리 또한 전체들 안에서 들리고 있기에, 주체도 객체들 속에서 자신의 실제 위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것, 우리는 세계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 줍니다.
즉, 봄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들음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읽힐’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지브란의 이 짧은 대구(對句)는 같은 이야기의 두 버전 같지만
전혀 다른 두 이야기가 쌍을 이루어 서로를 반영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둘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인간화할 수 있고,
그렇더라도 인간 또한 자연의 한 가지, 동기(同氣)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비밀이지 않습니까?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