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면할 것은 타인
내가 정말로 대면할 것은 타인. 가까운 타인은 내가 보게 되는, 나와 다른 자아를 가진 타인. 그리고 멀게는 나 자신이 다른 타인. 그때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르고 나를 낯설게 바라볼 것이고 나에 대해 판단하고 느낄 것입니다.
나는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고 매순간에 미래의 남이 아닌 나에게 책임을 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 기분을 따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긴 전망 안에서 타인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럼 어쩌라고?
그래요. 멋대로 하세요.
그러나 방만하게 마세요. 그거 제멋대로 하는 자기 안의 타자에 휘둘리는 거예요. 진정한 타자는 자기 바깥에 있어요. 그러므로 추구미? 그런 말 하죠? 뜻하세요. 그리고 뜻한 대로 살아요. 그게 그대 멋대로 사는 것.
뜻대로 하세요. — Fac ut vis.
사랑하지 않으면, 타자를 지향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뜻할 수 없으니. 이 말은 그대에게
“사랑하라, 그리고 원하는 대로 하라”(Ama, et fac quod vis)는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of Hippo)의 말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타자를 지향하세요. 지성과 의미 모두로. 그것을 일러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고 나면
그대가 자유로워집니다.
자유라는 특별한 능력을 얻습니다.
마치 인류가 처음 ‘언어’를 발화해 ‘소통’하고 ‘연대’하기 시작한 것 같은 일이
자기 존재, 자기 자신에 대하여 벌어집니다.
타자로서의 자신을 연대하고 일치하여 감으로써, 이 이행 중에 비로소 자기가 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랑을
타자를 사랑하면서 배웁니다, 아하, 하고 알게 됩니다.
걷기를 익히는 데 약 60만 번 넘어진다고 합니다.
자유함이 그보다 더 적은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걷기조차 그 자유함의 아주 작은 일부인 것이니까요.
한 끼가 소중하다면 백억 끼는 아무튼 그보다는 더 귀중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