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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앤박 Nov 12. 2024

어이없는 실수

몇 년 전부터 한 겨울이 아니면 난방을 틀지 않는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와 다음 세대에게 망가진 지구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조금의 양심을 남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예전에 유럽 여행을 할 때, 우리나라 같은 줄만 알고 호텔에서 난방을 빵빵하게 틀어주겠거니 했다가 영국 호텔에서 추웠던 기억이 있다. 그들은 겨울에 집안에서도 두꺼운 옷을 입고 난방을 아껴 쓴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겨울이면 난방기 온도를 높이고 집안에서 반팔과 반바지만 입고 지내는 경우들도 흔하다. 


관리비를 아끼려는 마음도 있지만, 옷을 따뜻하게 입고 수면양말을 신으면 아주 추운 날이 아닐 경우에는 난방을 틀지 않고도 버틸 수 있다. 무풍 에어컨이 나오기 전에는 우리 집에 에어컨이 없었다. 앞뒤 베란다 창문을 열면 맞바람으로 시원하고 아무리 더워도 선풍기 바람을 맞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직장에 다니느라 뜨거운 한낮에는 집에 없어서 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난 찬바람이 몸에 닿는 것을 싫어한다. 요즘은 갱년기가 시작되면서 온몸에 불이 난 것처럼 더위를 참기가 어려워졌다. 마침 무풍 에어컨이 출시되어 올여름처럼 찌는 듯한 더위에는 9월까지 에어컨을 틀 수밖에 없었다.


10월 중순으로 접어드는 때의 일이다.

올해는 9월까지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터라 10월로 들어서면서 갑작스럽게 쌀쌀해진 날씨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그래도 아직 난방을 틀 정도는 아니었는데 마룻바닥에 따뜻한 기온이 감지됐다.

"이상하다. 어디에 난방이 틀어졌나?"

각 방을 돌아다니며 살펴보아도 난방기(暖房機)가 틀어져 있는 곳은 없는데 바닥은 점점 더워지고 있었다. 지난봄, 아들방의 난방기가 고장 나 어이없이 관리비를 더 내는 곤욕을 치른 적이 있어 신경이 곤두섰다. 금요일 저녁이라 난방이 흐르지 않게 하려고 차단기를 내려놓았지만, 문 앞에 있는 계량기를 쳐다보니 역시나 계속 숫자가 올라간다. 


맥없이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 되어 봄에 수리해 준 사장님께 연락했다. 공교롭게도 여행 중이라며 함께 일하고 있는 다른 분의 연락처를 알려주셨다. 동료분에게 연락을 했더니 일거리가 밀려 수요일쯤이나 올 수 있다고 한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번에도 영락없이 관리비를 더 내야겠구나 하며 푸념하고 있는데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오후 4시쯤 연락이 왔다. 혹시 집에 있느냐며 잠시 짬이 나서 일을 봐주겠다고 한다. 감사한 마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주방에 있는 난방 차단기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난방기와 연결된 선을 찾았다. 지난여름 아랫집에서 오래된 전선으로 불이 발생해 아파트 전체가 난리를 겪고 난 후, 사용하지 않는 전선과 오래된 전기코드를 교체했다. 혹시나 그때 우리가 잘못 잘라버린 것은 아니겠지. 여름이라 그동안 모르고 지내다가 관리실에서 겨울을 준비하며 시험 난방을 흘려보내니 그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당황하고 있는 우리와 달리 사장님은 연결된 선이 다르다며 주방을 살폈다. 


범인은 김치냉장고였다. 지난 7월 오래된 김치냉장고가 고장 나 새로 교체하면서 전기코드에 연결된 스위치가 눌려 스위치가 꺼져있었다.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너무 어이가 없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우리끼리 김치냉장고 뒤를 살피고 잡아당겨 스위치만 켜면 되었던 것인데 며칠을 끙끙거리다 수리기사까지 불렀으니 말이다. 


죄송한 마음에 출장비를 드리려고 했더니 사장님께서 가까운 곳에 오는 길에 왔다고 사양하셨다. 바쁜 와중에 챙겨서 먼저 와주셨는데 미안함과 감사함이 교차되면서 어이없는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해 주신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겨울이 다가오면 점점 더 바빠질 텐데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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