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트라우마
어릴 적 트라우마로 나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면 움찔하고 먼저 놀라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면 조금 과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강아지와 고양이로 인해 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요즘 대부분이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다 보니 곳곳에서 개들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도 개가 있으면 먼저 올라가라 인사하고 기다렸다가 엘리베이터를 탄다. 공원이나 등산로에서 산책용 목줄을 너무 느슨하게 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 길을 걸어갈 때 잠시 멈춰 서거나 먼 길을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나처럼 반려견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개 주인들의 배려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신혼 초에 있었던 일이다. 집은 일산이고 사무실은 명동이었다. 주차공간이 적을 때이기에 먼 거리지만 차를 가지고 출퇴근을 할 수가 없었다. 출퇴근을 하는데 다양한 방법이 있었지만 남편과 나는 자동차와 전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자동차로 구파발까지 가서 전철을 이용하는 식이었다. 구파발에서는 앉아서 갈 수 있었기에 출근시간에 버스와 전철에 시달리는 것을 피해 출근할 수 있었다.
그날도 다른 때와 변함없이 자동차로 구파발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하지만 주차하는데 조금 시간을 낭비하다 보니 전철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서 역에 도착해야 했다. 남편은 내 손을 잡고 골목길을 서둘러 걸어가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바삐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편이 멈춰 섰다. 아니 갑자기 왜 멈췄지? 겨우 두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었기에 우리는 빠르게 가기 위해 남편은 앞서고 나는 뒤에서 따라가고 있었다.
“왜, 갑자기 멈춰요? 시간 없다고 하면서…"
말과 동시에 나도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앞을 보니 마르고 작은 개 한 마리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남편과 대치하고 있었다. 남편은 개를 무서워하는 나를 위해 개가 먼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개는 지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개는 동그란 눈을 뜨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개도 바짝 긴장했는지 털이 모두 일어서 있었다. 기다랗게 뻗은 길은 어디 한 군데 돌아서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출근 시간은 바쁘고 더구나 전철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 가야 하는데 이놈의 개가 움직이질 않는다.
나는 속으로
‘얘, 너 왜 안 지나가는 거야. 우리 지금 시간이 없다고. 네가 지나가야 우리도 빨리 출근을 할 거 아니야. 제발 빨리 지나가렴.’
남편과 나는 개에게 먼저 양보하고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녀석은 도대체 지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갑자기 남편은 비장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내 손을 꽉 붙잡고는 벽에 딱 붙어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녀석도 벽 쪽으로 몸을 바짝 붙이고 꼼작하지 않았다. 나는 더 긴장이 되어 손에 땀이 흥건해졌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무사히 이 길을 지나갈 수 있기 만을 기도하며 조금씩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행히 그 자리를 모면하고 조금 더 걸은 뒤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냅다 달렸다.
우리는 전철을 타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성인 두 사람이 작은 개 한 마리가 무서워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던 모습이 떠올라 우습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그 후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그 길을 이용했다. 다른 길로 가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빠른 길을 선택한 것인데 웬일인지 그 이후 조그마한 녀석은 보이질 않았다. 그러자 남편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개는 아무래도 큰 개에게 혼이 나서 안 보이는 걸 거야. 자기처럼 작은 녀석을 보고 어른 둘이 놀랐으니 자신이 꽤 무서운 놈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그러다 큰 개에게 덤벼들었다가 혼이 난 거야. 아마 다시는 이곳에 얼씬거리지도 못할 걸. 이제 안 나타날 테니 안심해.”
남편의 말이 하도 어이가 없어 우리는 허허 웃으며 출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