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지점장은 처음이야

지점장으로 첫 부임해서

by 민앤박

준법지원부 내부통제시스템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 지점장 승진을 했다. 오랜 기간 직급별 연수를 진행하면서 나를 위한 연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지점장 연수에 참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맡고 있던 내부통제시스템의 안정된 정착을 위해 부서에서 계속 남아있기를 요청했다. 책임자 때 심사역 연수를 신청했을 당시에도 프로젝트 활성화를 위해 부행장님께서 인사부에 유임 요청으로 연수를 떠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연수까지 갈 수 없게 되자 아쉬움이 가득했다. 모두가 다 6개월 연수를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 업무를 떠나 동료들과 함께 배우고 끈끈한 결속력을 다질 수 있는 연수가 내게는 필요했다.


내부통제시스템은 점점 성과를 내고 있었다. 처음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부서에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조금씩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왔다. 영업점 사고 예방과 불필요한 업무 개선은 물론 업무 전달이나 교육면에서 효과가 나타나자 해당부서의 업무를 점검해달라고 먼저 요청하기 시작했다. 내부통제 회의는 매월 정기적으로 진행되었다. 준법감시인(상무)을 모시고 각 영업본부를 방문하며 앞으로 진행할 일들을 설명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여 반영했던 것이 좋은 성과를 가져왔다. 역시 언제나 답은 현장에 있었다. 현장을 알지 못하면 동떨어진 기획을 하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한 것이다.


내부통제시스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상무님께 다음 인사이동에서 지점장으로 나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언제나 힘들더라도 본부와 영업 현장을 두루 경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6개월 전부터 언제라도 떠날 수 있도록 팀원들에게 업무를 가르치며 조용히 인수인계하고 있었다.

"지점장으로 나가면 접대를 위해 술도 잘 마시고 골프도 쳐야 한다."

상무님께서는 지점으로 나가겠다는 말이 조금 섭섭하신 모양이었다. 임원들을 모시고 진행하는 내부통제 회의가 끝나고 점심 식사 자리에서 나를 가리키며

"000 부장이 영업점으로 나가고 싶은가 봅니다."

하며 수석부행장님께 말씀하셨다. 갑작스러운 말씀에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무슨 소리야. 여기서 계속 일해야지. 어딜 도망가나?

수석부행장님께서 나를 쳐다보셨다.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에 인사부 H 부장이 내게 물었다.

"정말 영업점에 나가려고? 지금같이 힘든 시기에 굳이 영업점으로 나가려고 합니까?"

"힘든 것은 알지만 그래도 지점장 생활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 있으면 몸은 편하겠지만 직원들과 으쌰 으쌰 몸도 부대끼며 또 다른 성과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그해 12월 인사이동에 지점장으로 발령받았다. 집에서 차로 이동 거리가 멀지 않았고 영업본부도 익숙한 곳이었다. 다만, 여성고객들이 많은 아파트 밀집지역이 아닌 작은 중소기업들로 구성된 지역이었다. 영업본부 지점장 회의에 참석했다. 다행히 인연이 있는 지점장들이 많았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 여자 지점장이 5명이라 서로 의지가 되었다.


지점에는 이번 인사이동으로 나를 비롯하여 3명의 직원이 새로 부임했다. 나와 동갑인 W 부부장과 PB출신의 여자 차장 L이었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계 이동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지점을 둘러보았다. 기존의 영업방식과 다르게 새로 VIP실을 만들고 PB 차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지점 직원들에게 상품 교육을 진행했다. 팀별로 직원 상호 간에 서로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적은 인원이지만 누구든지 업무에 지장 없이 휴가를 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지점 특성상 주거래 고객보다 일회성 고객이 많은 것을 파악하고 VIP실을 활용하여 밀착 영업을 시작했다.

거래처를 방문할 때는 지점 환경을 고려해서 중소 RM과 함께 방문했다. 첫 거래처로 명예 지점장님의 공장을 방문했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 갔던 많은 지점장이 모두 남자 지점장이었기에 인사를 갔더니 첫마디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 여자 지점장이시네요. 여자 지점장은 처음입니다. 반갑습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지점의 여러 불만 사항들을 털어놓으며 협조를 부탁하셨다. 다음 거래처에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가는 곳마다 모두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여자 지점장이시네. 이렇게 곱상하니 생겨서 일을 제대로 하실 수 있을까? 여기는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라 거칠고 힘드실 텐데."

걱정하는 뉘앙스이기도 하면서 조금은 무시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많은 분이 술은 먹을 줄 아느냐고 물어보셔서 나는 미소로 답하곤 했다.


거래처 방문 후 나만의 리스트를 작성했다. 자주 방문해야 하는 곳과 거래처에 따른 특성을 메모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생각했다. 첫 과제로 고객들 스스로 우리 지점에 대해 애착을 갖도록 했다. 지점 창립 기념일을 맞아 영업본부장님을 모시고 지점의 큰 거래처들을 초청하여 조촐하게 행사를 진행했다. 오전 일찍 영업 시작 전, 고객들과 다과를 나누며 서로 대면할 수 있는 이벤트를 가졌다. 고객들은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어 감사하다 하시며 처음 하는 행사라 많이 쑥스러워하셨다. 주요 고객들께 본부장님을 소개하고 직원들 역시 주요 거래처를 익힐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지점 내부적으로는 금고와 서고, 개별 책상의 서류들을 정리하여 주변이 깔끔하게 만들었다. 지점에 들어오면 쾌적한 환경에서 업무를 보실 수 있도록 사무실에서도 잘 자라는 초록색 화분들로 꾸몄다. 고객들이 쉽게 좋은 상품들을 알아볼 수 있도록 벽면에 게시판을 만들고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책자들을 배치했다. 이렇게 변화를 주었더니 예전에는 간단한 입출금 업무만 하던 고객들도 직원들과 상담하면서 적극적으로 예금을 예치하는 사례들이 늘어났다. 일반 창구와 VIP실을 연계하여 전문적인 설명이 필요한 업무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실적이 날로 증가하는 효과를 얻었다. 이러한 성과는 영업본부를 비롯하여 본점까지 작은 발난(發難)을 일으켰다. 급기야 본점 신탁부에서 은행장님께 보고하고 지점으로 상금을 들고 상무님께서 내방하셨다. 직원들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나 역시 큰 동기부여가 됐다. 우리의 작은 실천을 눈여겨보고 칭찬과 격려로 화답해 주심에 감사하여 예쁜 카드 한 장에 전 직원이 손수 감사한 마음을 적어 책과 함께 은행장님과 상무님께 전달했다.

"사람이 세상을 바꿉니다. 매일 한 걸음씩 노적성해(露積成海)의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할 것입니다. 서로 열심히 즐겁게 이어갑시다."

함께 이룬 성과를 격려하기 위해 동일한 책에 인사말을 적어 직원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회식하면서 재미있는 명칭을 붙여 시상했다. 상품으로 외화통장을 만들어 상금에 준하는 달러를 입금해 주었더니 직원은 통장을 받아 들고 신선한 아이디어라며 즐거워했다.


지점에서 일을 추진할 때마다 언제나 내 편에서 일을 잘 서포트해준 L 차장은 가녀린 몸에도 강단이 있고 야무지게 업무를 추진했다. 나는 그녀와 멀리 안산까지 운전하여 고객을 만나러 가곤 했다. 내가 가장 공을 들이는 고객이었고 장거리 고객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유대관계를 유지했다. 여신 거래가 없던 T 회사는 기존 거래처와는 조금 다른 결의 대표님과 직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점 바로 옆 빵집은 일본에서 기술을 연마한 사장님께서 맛있는 수제 빵을 만들어서 거래처에 갈 때마다 간식거리로 사가곤 했는데 가는 곳마다 직원들이 좋아해 자주 이용했다. 먼 길을 언제나 즐겁게 방문하는 우리 정성을 보시고 대표님께서 점점 거래를 늘려 주셨다. 뿐만 아니라 직접 방문하여 개인 빌딩 구입을 위해 상담하시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여 원하는 빌딩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해드리면서 관계를 더욱 곤고하게 이어갔다.


큰 거래처가 아닌 작은 소매업을 하는 고객들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지점 이벤트를 통해 지점과 거래하는 작은 빵집이나 카페, 음식점들을 고객에게 알리기 위해 우리 지점만의 쿠폰을 만들었다. 이벤트 당첨자들이 식사나 음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더니 가게를 홍보해 줘서 감사하다고 좋아하셨다. 거래처와의 관계에서는 회사 대표뿐 아니라 직원들이 우리 지점을 주거래처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은행명을 새긴 종이컵을 만들어 박스 위에 응원 문구를 부착하고 기업 방문 시 선물로 드렸다. 자금을 담당하는 직원은 경비지출을 줄일 수 있는 좋은 선물이라며 적은 금액에서부터 큰 금액에 이르기까지 예치해주었다. 거래처를 방문할 때, 직원들과 함께 가는 이유는 지점장이 바뀌더라도 거래처와의 관계가 지속해서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거래처에서도 자신의 일을 누가 담당하는지 알게 함으로써 신뢰를 바탕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12월 연말을 맞아 직원들에게 그동안의 노고를 격려했다. 연말 선물로 10만 원 상당의 원하는 것을 쪽지에 적도록 했다. 직원들이 적은 종이를 들고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으로 갔다. 선물 하나하나를 고르고 포장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 수요일 아침 전 직원이 모였다. 직원들이 좋아하는 스타벅스 음료와 맛있는 빵을 준비했다. 한 사람씩 호명하며 선물을 건넸다. 제일 먼저 청소 아주머니께는 따뜻한 겨울을 보내시라고 포근한 머플러를 선물했다. 지점 개설 때부터 근무하셨다는 아주머니는 이런 선물은 처음 받았다고 눈물을 보이시며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하셨다. 청원경찰은 사회야구인으로 활동하고 있어 그가 좋아하는 티셔츠를 선물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고 좋아했다. 직원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선물을 개봉하며 좋은 선물을 골랐다고 모두 기뻐했다. 마지막으로 양주(밸런타인)를 원했던 W 부부장은 술을 사기에는 비용이 부족해서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묵직한 선물을 건네받은 W 부부장이 선물을 개봉하자 모두 한바탕 껄껄껄 웃었다. 선물꾸러미에는 오백 원짜리 동전 10만 원이 멋지게 포장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부임한 지점에서 여러 어려움들이 있지만 직원들과 한마음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할 때마다 가장 협조가 안 되었던 W 부부장도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알아갔다. 직원들과 점점 호흡이 맞아 갈 즈음 인사이동으로 다른 지점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지점을 이끌면서 거래처로 인해 힘들었던 것보다 직원들의 협조를 얻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지점장으로 가장 보람된 일은 좋은 성과로 직원들에게 승진과 상을 받게 해주는 일이다. 첫 부임지에서 감사하게도 그 기쁨을 맘껏 누릴 수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고 함께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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