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50이 되었을 때, 막연하게 은퇴 후 지나온 경험들을 에세이로 쓰고 싶었다. 34년의 은행생활을 통해 다양한 업무를 접하고 경험했다. 대부분 은행원 하면 영업점 창구에서 고객을 만나는 사람으로 떠올린다. 하지만 그것은 은행 업무의 일부에 불과하다. 물론 내가 경험한 일들이 은행업무의 전부는 아니지만 시대적 사건들과 함께 은행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어왔기에 거쳐온 업무와 이야기들을 통해 은행의 변천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1993년 갑작스럽게 실시된 금융실명제와 1997년 외환 위기로 발생한 IMF 상황에서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경제적 위기로 금융권에도 변화와 혁신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은행들의 통폐합이 진행되었고 정년까지 걱정 없던 은행원들이 대량으로 실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은행들마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들을 찾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 변화의 물결 선봉에 서서 업무를 진행하였고 영업점과 본부를 오가며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은행 창구업무에서부터 비서, 프로세스 설계자, 연수담당자, 신입행원 면접관, 지점 개설에 따른 레이아웃 공사, 내부통제 관리 및 기획/운영, 조직관리, 지점장으로 다양하게 일했다.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니 내가 경험했던 일들이 하나씩 축적되었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 은행 발전뿐 아니라 개인적인 성장도 이루었다.
늘 열정을 가지고 업무에 임했기에 내게 주어진 일을 작다고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 작은 시간, 작은 최선들이 수없이 쌓이고 쌓여서 나의 도전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그리고 어느새 시간이 흘러 은퇴했다. 내가 지나왔던 시간들이 은행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고 변화의 시작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만들어 가야 했기에 많은 시간 밤을 새우며 고민하고 생각했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시점에서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프로젝트 리더는 내게 말했다.
"지금 네가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은 은행장의 결정이다. 작은 너의 역할이 아니라 은행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결정을 하도록 생각해야 한다."
이 말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애썼다. 또 당시에는 본부부서에서 일하는 여자 책임자 수가 극소수에 불과했기에 내가 하는 업무 성과가 다른 여직원들에게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일했다. 그렇게 나는 나무가 되어 동료들과 후배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혼자서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동안 나를 이끌어 주신 선배들과 함께 일한 동료, 후배, 그리고 소중한 인연으로 만난 고객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끝으로 나를 믿고 응원과 사랑을 보내준 가족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