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허무를 우리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별점: ★★★★
추천 대상: 철학을 좋아하시는 분, 짧지만 깊은 내용의 소설을 원하시는 분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무의미의 축제는 밀란 쿤데라의 마지막 작품이다. 알랭과 라몽 등 여러 등장인물들이 여는 칵테일파티가 주된 줄거리인데, 큰 갈등이나 사건이 안 나온다. 그래서 다 읽었는데도 다 읽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중간중간 나오는 암, 죽음, 삶에 대한 철학이 이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전부였다. 무의미의 축제라는 제목과 걸맞는 작품이었다.
삶은 긴 것 같기도 하고 짧은 것 같기도 하다.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게 차고 넘친다. 삶은 고통인데, 스스로 죽지는 말라고 한다. 내 맘대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내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다.
이러한 무의미를,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세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농담처럼 삶을 살라는 말이 책에 자주 등장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무의미를 왜 사랑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아직 못 찾았기 때문에.. 전적으로 이 책에 동의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신박한 구성과 등장인물의 독백이 재미있는 책이었다.
200쪽 남짓 되는 짧은 분량 덕분에 바쁜 와중에도 읽기 좋았다.
아래는 읽으며 공감되었던 부분을 기록해두었다.
33p.
“사람들은 살면서 서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다투고 그러지. 서로 다른 시간의 지점에 놓인 전망대에서 저 멀리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건 알지 못한 채 말이야. … ” “시간은 흘러가. 시간 덕분에 우리는 살아 있지. 그다음 우리는 죽고, 우리를 알았던 이들과 더불어 몇 해 더 머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 죽은 사람들은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이 돼서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완전히 무로 사라져 버리는 거야. 아주 아주 드물게 몇 사람만이 이름을 남겨 기억되지만 진정한 증인도 없고 실제 기억도 없어서 인형이 되어 버려…… ”
136p. 알랭의 어머니와 알랭의 대화 중
“솔직히 말할게. 누군가를, 태어나게 해 달라고 하지도 않은 누군가를 세상에 내보낸다는 게 나한테는 늘 끔찍해 보였다.”
“알아요.” 알랭이 말했다.
“네 주위를 둘러보렴, 저기 보이는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자기 의지로 여기 있는 건 아니란다. 물론 지금 내가 한 말은 진리 중에 제일 진부한 진리야. 너무 진부하고 기본적인 거여서 이제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귀기울이지도 않을 정도지.”
그는 몇 분 전부터 양쪽에서 조여오는 트럭과 자동차 사이로 달렸다.
“모두가 인간의 권리에 대해 떠들어 대지, 얼마나 우습니! 너는 무슨 권리에 근거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야. 자기 의지로 삶을 끝내는 일까지도 그 인간의 권리를 수호하는 기사들은 허락해 주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