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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by 녹턴

별점: ★★★★☆

추천대상: 건조한 서술을 좋아하시는 분, 겨울같이 차가운 시집을 찾으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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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읽고 딱 먼저 떠오른 키워드는 ‘질문’이었다. 시를 읽다 보면 일상에서 비롯된 얕고 깊은 질문이 수도 없이 나온다. 감정이 크게 들어 있지는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이 시대를 멀리서 바라보며 던진 호기심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는 현실적인 소재로 현실에서 나올 수 없는 문장을 만들어낸다. 신비롭고 차가운 문체가 내 마음에 들었다.

여름보다는 겨울에, 해보다는 구름에 어울리는 시집이다.



그날
그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 치는 노인과 변통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일단 쓰고 나서 깨달은 건데.. 행 길이를 맞추려고 저렇게 했구나.. 신기함


저게 다 하루에 일어난 일이다. 많은 사건들을 속도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앞은 일상에 가까운 얘기들이고, 뒷부분으로 갈 수록 어딘가 떠나가는 느낌이다.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고,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뽑아버린다. 아마 일 속에서의 실수, 사건이지 않을까? 마지막에는 몇 건의 교통사고가 일어나지만 아무도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병이 들었다는 건 객관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아프다는 인간이 느끼는 감각이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프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시대가 주는 고통에 무감각해졌다는 뜻이다. 나는 쭉 읽다가 마지막에 저 부분을 읽고 무릎을 탁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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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친구들이 출세를 하는 부분 빼고는 전부 무언가가 ‘본연의 기능’을 잃는 상황이다. 생명력을 잃는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 단락에서의 예시들처럼 갑자기 내가 내가 아니게 되면 어떡하지? 그러면 도대체 왜 사는 걸까.


반대로 마지막에 많은 불개미들이 꼬물거리며 죽은 지렁이를 갉아 먹는 모습은, 징그러울 정도로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왜 이걸 마지막에 넣은 걸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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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절이 무질서하게 흩어져있다. 하지만 근처의 어절을 잘 조합해 보면 화자가 의도했을 문장이 만들어진다. 일부러 넓게 해둬서 천천히 읽게 되고 여운이 남았던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고 복숭아꽃 피고 노래가 마을이 되는 나라. 그곳은 아마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 같은 곳이지 않을까?(근데 고통이 존재하지 않으면 행복도 존재할 수 없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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