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헤드의 수많은 명반 뒤에 가려진 또다른 명반
라디오헤드의 앨범 중 제일 난해하면서도 잘 뽑힌 명반은 Kid A일 것이다. 이 Kid A 뒤에, Kid B가 될 뻔했던 또 다른 수작, amnesiac을 소개하려고 한다.
Amnesiac의 다른 앨범과의 차이점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난해하다. 몇몇 트랙에선 차가운 전자음 소리를 정제하지 않고 넣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록 느낌이 거의 나지 않았다. 두 번째로 재즈를 섞었다. 2, 4, 11번 트랙 등 여러 트랙에 재즈의 진행방식과 악기가 녹아져 있다.
Amnesiac의 첫 트랙은 Kid A의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보다도 불친절하다. 차가운 전자음과, 반복되는 가사를 듣다 보면 내가 지금 음악을 듣고 있는 건지 주문을 듣고 있는 건지 헷갈린다. 새빨간 종이 속 별자리와 캐릭터 때문에 오컬트같은 앨범이라고도 생각했다.
다음 트랙은 이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곡일 것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4/4박자 피아노 리듬과, 신비로운 분위기를 주는 현악기 반주가 특징인 Pyramid Song이다. 불규칙적인 드럼과 피아노 소리에선 오묘한 재즈가 느껴지는데, 이게 라디오헤드 특유의 전자음과 합쳐지니 상당히 신기한 소리가 난다. 필자는 다른 건 모르겠고 박자가 정말 신기했다. 발바닥으로 4/4박자를 세려 해도 자꾸만 엇나가고, 영상을 보고 나서야 이게 4/4박자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연습할 땐 어떻게 4/4박자를 인식하는 건지 문득 궁금해진다.
3번 트랙은 강한 전자음과 리버브를 내 귀에 꽂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트랙 길이가 짧기도 하고 가사가 속삭이는 듯 거의 들리지 않아서, 하나의 트랙보단 트랙 두 개를 잇는 웜홀같다. 마지막에 악기의 피치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부분이 좋았다.
4번, 5번 트랙이 내 베스트 트랙이다. 입을 막아서 소리를 내는 것 같은 몽환적인 보컬과, 시니컬한 기타 연주는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멜로디 끝에, 피아노와 드럼이 노래를 조용하게 터뜨린다. I might be wrong도 비슷한 스탠스의 곡이다. 다만 방금 곡보다는 기타 리프의 질감이 더 강조된 거친 곡이다.
트랙의 절반이 지나간다. 8번 트랙은 절규하듯 소리치는 톰 요크의 보컬과, 그 아래에 깔린 중얼거리는 리버브가 합쳐져 여러모로 혼란스럽다. 달러, 센트, 마르크와 엔, 화폐가 되어 앞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조용히 하라는 외침은, 신자유주의에서 나가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보인다.
마지막 두 트랙도 내가 아끼는 곡이다. Like Spinning Plates는 정말 내 앞에서 접시가 도는 것처럼 불규칙적인 전자음 소리가 트랙 내내 빠르게 지나간다. 다시 찾아보니 저 백그라운드 소리는 백마스킹이었다고 한다.. 저 반주만으로도 우주에 있는 것 같았다. Life in a Glasshouse는 재즈 향이 짙게 나는 트랙이다. 전통 재즈 트럼펫 연주자가 참여했다고 하는데, 트럼펫 소리가 진하게 나서 좋았다. 1분 40초쯤부터 시작되는 코러스를 들으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젠 너무 잘 알고 있는 부분이지만 들을 때마다 압도된다.
진입장벽만 넘으면 이 앨범이 얼마나 마스터피스인지 알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