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점: ★★★★
추천 대상: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다 읽어보신 분/ 작가의 초기 작품을 읽어보고 싶으신 분
이 작품은 오사무의 다른 소설과 달리, 옛 고전마냥 글자가 잘 안 읽혔다. 세 어절로 끝날 문장을 네다섯 어절로 길게 말해서 중심 내용을 잡는게 어려웠다. 작가의 혼란스러운 의식이 투영된 부분은 더 그랬다. 이게 화자가 말하는 건지, 화자의 심리를 서술한 건지, 작가가 개입해서 작가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건지., 헤메다 보면 작품이 끝나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계속 읽은 이유는, 시 한 편을 읽는 듯한 그의 문체 때문이었다.
죽으려고 했다. 올 설날, 옷 한 벌을 받았다. 설빔으로. 옷감은 삼베였다. 잔 줄무늬가 있는 쥐색 옷이었다. 여름에 입는 옷일 것이다. 여름까지 살아 있자고 생각했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구절이다. 읽자마자 여름의 햇살과 삼베의 시원한 질감이 느껴진다.
안락한 삶을 살 때는 절망의 시를 짓고, 메마른 삶을 살 때는 생의 기쁨을 쓰고 또 쓴다.
나도 저 글귀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마음이 여유로울 때면 우울한 노래를 듣고, 여러 일이 닥쳐 힘들 때면 희망의 노래를 찾는다. 오사무의 글을 읽을 때마다 당연했던 나의 경험들이 다르게 느껴지고, 인간에게 연민을 갖게 된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허사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오사무는 그럼에도 칙칙한 어둠 속에서 희망을 찾고자 한다. 그의 소설 <사양>에서 주인공이 죽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완구>라는 제목의 이 소설에서 자세의 완벽성을 내보일까, 정념의 모범을 내보일까? 그러나 나는 추상적인 어투를 가능한 한, 간신히 삼가야만 한다. 어떻게도 결말이 나지 않아서다. 한마디 변명을 늘어놓기가 무섭게 연달아 자꾸자꾸 앞 말을 뒤쫓아 가다, 결국은 1000만 단어의 주석. 그리고 뒤에 남는 것은 두통과 발열. 아아 바보 같은 이야기를 했다는 자책. 뒤이어 똥통에 빠져 익사하고 싶은 발악.
오사무의 글에선 그의 솔직한 생각이 자주 느껴진다. 돈 안 되는 글을 쓰는 자신에 대한 혐오. 이렇게 쓰는 게 맞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와 불안.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믿으려는 그의 자부심까지.. 참 마음 속 소용돌이가 많은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글을 쓸 때 나 자신도 떠올랐다. 이걸 내가 왜 쓰고 있었지, 싶을 때 갑자기 글을 그만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걸 써서 팔 생각도 아닌데, 왜 수십 쪽을 써내려가고 있더라. 무얼 위해 이렇게까지 고뇌하며 세상을 창조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더라. 나만 글을 쓰며 이런 생각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작가의 독백을 읽으면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싶으면서 위안을 얻는다.
사물의 이름이란 그게 어울리는 이름이라면 굳이 묻지 않더라도 절로 알게 되는 법이다. 나는 내 피부로 들었다. 멍하니 물상을 응시하고 있노라면, 그 물상의 언어가 내 피부를 간지럽힌다. 예를 들면 엉겅퀴. 나쁜 이름은 아무런 반응도 없다. 여러 번 들어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름도 있다. 예를 들면, 사람.
예쁘다고 생각한 또다른 구절이다. 이 부분에선 어두운 글만 쓰는 줄 알았던 작가의 다른 면모를 보았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아무리 들어보아도, 사람은 알기 힘들었다는 말에서 그 고뇌의 과정을 살짝 본 것도 같다. 내가 여러 질의 사람을 봐오면서 느낀 고뇌와도 비슷해보여 기분이 이상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 <인간실격>, <사양>은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로써 우리에게 베스트셀러로 알려졌다. <만년>은 그의 내면이 더 솔직하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드러난 작품집이다. 다자이 오사무라는 인간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는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