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도덕을 좇는가?
별점: ★★★★
추천대상: 니체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관련 입문 서적을 읽어보신 분
도덕성이 높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얼 뜻하는가? 겸손할 줄 알고, 남을 배려하고, 이타심을 가진 사람을 보통 도덕적이라고 말한다. 도덕은 긍정적인 가치로 분류되지만, 인간의 본능적인 이기심, 욕망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 왜 인간은 도덕성을 높이 평가하고, 도덕을 중요시하게 된 걸까?
니체는 계급제 사회로부터 도덕의 역사를 이끌어 낸다.
귀족과 노예가 존재하던 계급제 사회에서, 귀족이 추구하고자 하는 ‘좋음’이라는 가치를 가정해보자. 이 가치는 인간이 자연스레 추구하게 되는 여러 이상향들을 말한다. 좋은 재화를 가지고자 하는 소유욕, 정복욕, 성욕같은 기본적인 욕구가 이에 해당한다. 귀족은 우위를 점하고 있기에 이러한 이상향을 자유롭게 실현할 수 있다.
귀족의 '좋음'을 이루지 못한 노예 계급은 이에 불만을 가진다. 노예는 귀족이 좋다고 여기는 가치들을 ‘악’한 것으로 뒤집는다. 그리고 노예 계급에 위치한 자신들이 그러한 가치를 누리지 못하는게 ‘선’함이라고 주장한다. 가치의 전도가 일어난 셈이다. 이로서 선과 악이라는 노예 도덕이 만들어지고, 성직자들의 가치평가가 만들어진다. 그들은 인간에게 당연시되는 정복욕, 소유욕, 성욕 등을 제어하기 시작한다. 인간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가치평가 안에서 스스로 괴로워한다. 니체는 이 현상을 보고 인간이 동물적인 자연스러움을 잃고 병들었다고 말한다.
금욕주의적 이상을 제외하면, 인간, 다시 말해 인간이라는 동물은 지금까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다. 지상에서의 그의 생존에는 아무런 목표도 없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생존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없었던 것이다. 인간과 대지를 위한 의지가 결여되어 있었다. 인간이 겪는 모든 거대한 운명의 배후에는 더욱더 거대하게 "헛되다!"라는 후렴이 울리고 있었다. 무엇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 무서운 공허가 인간을 둘러싸고 있었다는 것, 바로 이것이 금욕주의적 이상이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중략) 인간은 대체로 보아 하나의 병든 동물이었다.
-300p
도덕이 만들어진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거부감이 든다. 우리가 한낱 동물에 불과했다는 건가. 이런 노예 도덕이 존재하는 것부터, 인간은 동물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건 아닐까.
니체는 선과 악이라는 인위적인 도덕으로 인해 사람이 고통받는다고 말하지만, 인간은 좋음과 나쁨에 의해서도 고통을 받는다. 아무 이유 없이 타인을 도와주고, 자선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인간은 결국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종이기에, 다른 동물처럼 적자생존의 법칙이 완전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이게 동물과 인간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을 밟아야 올라갈 수 있는, 경쟁 안에서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이라는 대립쌍은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것 같다. 다만, 어떤 가치관이든 너무 팽배해지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전자로부터 흘러 나오는 본능을 거스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도덕을 경시해서도 안 될 것이다.
니체는 이렇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가치를 들추어내 그 밑바탕을 보여준다. 철학 서적을 어느 정도 읽어보았다면, 이 원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다만 모든 철학 번역서가 그렇듯 내용이 어렵다. 얇은 책이었지만 제대로 이해하는 데 일주일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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