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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불안

더 높이, 더 많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불안이란

by 녹턴

별점: ★★★☆

추천대상: 현대사회의 불안에 관심이 많으신 분/ 현대철학, 인문학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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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광화문 근처 책방을 갔다.

'베란다'라는 카페 겸 책방이었는데, 분위기가 좋았고 오래된 책이 많았다.


커피를 주문하고 책장을 뒤적거리던 중, 새빨간 책이 눈에 띄었다. 알랭 드 보통이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책을 집어왔다. 많이 들어본 소설가였는데, 한 번 도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불안의 원인, 불안이 자라나는 과정, 이에 대한 해결법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중세의 귀족 사회로부터 현대의 민주주의 사회로의 변화, 이 과정에서 사람은 많은 걸 누렸지만 동시에 더 많은 걸 갈망하게 된다. 왜냐하면 더 이상 신분의 제약, 태생적으로 주어진 위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반짝거리는 이상향을 꿈꿀 수 있는 지금, 사람들은 많은 걸 꿈꾸고 이에 굶주리고 만다. 분명 우리의 삶은 부족함 없이 풍요로운데 동시에 빈곤하다. 도대체 왜일까? 몇 가지 이유를 들어 그는 우리의 불안을 설명한다.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한다.

두려움은 세대를 따라 전해진다. 모든 학대 행위에 적용되는 패턴이지만, 속물도 속물을 낳는다. 나이든 세대는 낮은 계급에 속하는 것이 곧 재앙이라는 자신의 고정 관념을 젊은 세대에게 물려준다. 자신의 후손이 낮은 지위가 곧 무가치한 존재로 연결되지는 않고, 또 높은 지위가 곧 훌룡한 존재로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며 내적인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감정적 토대를 박탈해버리는 것이다.
35p, 속물근성

속물근성은 배금주의가 낳은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돈과 명예를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개인의 외적인 지위, 벌어들이는 수입 = 개인의 가치'라고 환원해버린다. 그 안에 담긴 나로서의 의미를 잊어버리면, 나 자신의 가치가 사라져버리는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그들은 공포에 시달리며 자신의 거짓된 가치를 높이려고 한다. 그게 없으면 나 자신은 무가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본문에서와 같이 아랫 세대에게 이어진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이러한 두려움을 받아 먹고 자라, 지금의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해오던 대로 똑같이 미래 자녀에게 두려움을 심어줄 것이다.


"출생과 운에 따른 모든 특권을 폐지했을 때, 모든 사람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누릴 때, 야망이 큰 사람은 위대한 일을 쉽게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며, 자신이 비범한 운명을 타고났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경험을 통해 금세 교정되고 마는 망상이다. 불평등이 사회의 일반 법칙일 때는 아무리 불평등한 측면이어도 사람들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대체로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후략)"
67p

발전한 사회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전보다 높아진 소득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를 더 부유하게 해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볼 때 우리를 더 궁핍하게 만든 걸지도 모른다. 무제한의 기대를 갖게 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과 얻을 수 있는 것, 우리의 현재의 모습과 달라졌을 수도 있는 모습 사이에 늘 간격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81p, 기대


주제 '기대'는 처음 말했던 사회구조의 변화와 이어진다.

평소에도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감은 원시 시대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 공감이 갔다. 지금 사회는 기술적으로 훨씬 발전했지만, 우리가 심리적으로 느끼는 행복도는 똑같거나, 오히려 낮을 수도 있다. ET의 세계관같이 앉아서 모든게 해결되는 세상이 찾아온다 해도 우리는 똑같이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질 것이다.


책에서는 여러 가지 해법을 제시하는데, 나는 '이성'을 설명한 부분이 인상깊어 가져와보았다.

불안을 느끼지 않으려면 우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나부터 독립적인 판단력을 가지고, 외부에 대응해야 한다. 철학자들은 이를 이성이라고 한다.


이 철학자들은 남들이 우리를 보는 눈으로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모욕은 근거가 있든 없든 우리에게 수치를 준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철학은 외부의 의견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새로운 요소를 도입한다. 상자를 하나 떠올리면 좋을 것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른 사람들의 인식은 모두 이 상자에 먼저 들어가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만일 그것이 참이면 더 강한 힘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만일 거짓이면, 웃음을 터뜨리거나 어깨를 으쓱하고 털어버리는 것으로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주지 못하고 사라져버린다. 철학자들은 이 상자를 '이성'이라고 부른다.
156-167p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주관을 갖는 것은 무지 힘든 일이다. 남이 하면 나도 하고, 모두 다 따라하는 집단주의적 문화가 남은 한국에서는 특히나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도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다보면, 남들이 보는 시선이 많이 신경쓰인다. 이 정도 대학과 과를 나오면 최소 이 정도는 해야겠지 하는 '기준선'이 있다는 듯이, 내가 고를 수 있는 직업은 그리 많지 않아보인다. 남들에게 물어봐도 전부 비슷한 직업군을 얘기한다. 선택한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은 '남들이 다 해서'였다.

그럼에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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