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노벨문학상 수상자, 깊은 우울로 추락하는 두 사람
별점: ★★★★
추천 대상: 이상의 책을 좋아하시는 분, 의식의 흐름 기법에 관심이 있으신 분
재작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욘 포세의 작품이다. 작년 서점에서 열심히 홍보를 하고 있길래, 궁금해서 책을 사버렸다. 작년에 읽었지만 워낙 인상깊었던 작품이라 지금이라도 소개하려고 한다.
멜랑콜리아 1의 서술자는 화가 라스이다. 그는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다. 유명한 화가가 되겠다는 열정으로 그는 자신이 살고 있던 지역을 떠난다.
라스는 자신감이 넘치지만, 자존감이 아주 낮다. 그래서 주위 동료들에 대한 열등감, 반감의식이 매우 강하다. 라스는 자신이 아는 화가들의 실력을 부정한다. 이는 자신이 그림을 제일 잘 그리고 싶다는 염원과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1인칭 시점이지만 라스는 자신을 '그'라는 3인칭 단수로 표시할 때가 있는데, ‘그는 그림을 못 그린다.’라는 독백이 수도없이 많이 나온다. 라스의 성격과 아주 맞는 독백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 독백이 심각하게 자주 나온다는 점이다. 라스의 독백은 라스의 정신상태가 안좋다는 걸 넘어서, 그가 중증의 정신병을 앓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난이라는 환경도 그의 열등감에 큰 영향을 준다. 라스가 자신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보라색 코듀로이 정장을 유독 강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정장을 통해 그는 다른 화가들에게 인정받고, 가난을 감추려고 한다.
그는 하숙집 주인의 자녀인 헬레네를 사랑하게 된다. 다만 라스는 20대 중후반, 헬레네는 겨우 15살이다. 헬레네 또한 사랑을 인정하지만, 라스는 이미 열등감과 편집증에 빠진 환자 신세였다. 그녀에게 집착하고 또 회피하며, 라스의 편집증은 점점 심해져간다.
그림을 그려 세계 최고의 화가가 될 수 있다는 확신. 반대로 자신의 그림이 실패할 지도,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못하리라는 불안. 모순되는 두 감정 때문에 미쳐버린 그의 이야기는 정신병원에서 끝을 맺는다.
멜랑콜리아 2부는 라스의 누나 올리네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알츠하이머, 시력 저하, 노화로 몸이 많이 망가진 상태였다. 그 상태로 그녀의 현재 상황에 대한 독백, 과거 회상, 심리상태가 중첩되어 서술된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인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의식적으로 통제를 하려 해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모습,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엉망이 되어버린 집, 방금 전 만난 이웃이 누구였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
그녀의 또다른 동생 쉬버트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상황이 그녀의 처지를 더 비극적으로 만든다. 그녀는 처음 쉬버트의 부인에게 그가 죽기 전 당신을 꼭 만나고 싶다고 듣는다. 그녀는 바로 쉬버트의 집으로 가려고 하지만, 어느새 그녀는 그걸 잊고 만다. 자신의 집에 도착했을 때 쉬버트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녀는 다른 이웃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이웃과 대화를 나누던 중 쉬버트를 간신이 기억해낸다.
하지만 그의 생명이 얼마나 위중한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밖으로 나가 쉬버트의 부인과 다시 마주쳐서야 그녀는 쉬버트를 찾아가야 한다는 걸 기억하고, 쉬버트의 집으로 간다. 하지만 쉬버트는 이미 죽어있었다. 시력이 나빠 쉬버트가 죽은 줄도 모른 채 그에게 말을 거는 모습이 짠하다.
두 서술자의 독백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끝나있는, 짧지만 굵은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분량이 많아 조금 부담스러웠는데, 생각보다 금방 끝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술을 재능의 영역으로 간주한다. 재능은 사고력과 판단력같은 능력과 달리, 불확실하고 비교하기가 힘들다. 예술가들은 이 불확실한 재능을 믿어야 하고, 그렇기에 그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라스가 가진 정신병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겪은 아주 보편적인 것일 수도 있다.
작가는 이러한 라스의 내면을 아주 정교하고 자세하게 표현했다. 자기가 직접 그림을 그려본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라스의 편집증적인 심리 묘사는 뛰어났다.
2부 올리네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생명력을 잃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알츠하이머로 대표된다. 방금 전에 얘기했던 걸 까먹어버리고, 그녀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존재인 쉬버트를 아무렇지 않게 잊어버리는 모습이 비극적이었다. 이 부분에서도 우울함, 어두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왜 노벨상을 받았는지 알 것 같은, 강렬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