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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칼의 노래

역사적 위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이순신 이야기야기

by 녹턴

별점: ★★★★☆

추천대상: 솔직히 아무나 읽어도 재밌을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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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나온 김훈의 신작 '허송세월'을 읽고, 그의 책을 더 찾아보던 중 대표작 칼의 노래를 읽어보았다.

칼의 노래는 이순신 장군의 시점으로 임진왜란의 여러 전투들을 일대기처럼 서술해놓은 소설이다. 언제까지나 허구이지만, 그의 묘사는 정말 이순신 장군이 경험한 일처럼 생생했다.


바다를 건너오는 바람은 늘 산맥처럼 출렁거렸다. 겨울이면, 병영 담벽에 걸어놓은 시래기가 토담에 쓸렸고, 포구에 묶인 배들은 밤새 바람에 삐걱거렸다. 바람이 몰려가 버린 빈 자리에 밀물로 달려드는 파도 소리가 가득 찼다. 바람의 끝자락에 실려, 환청인가, 누에고치에서 실 풀려나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었다.

바다에서는 언제나 그랬다. 바람이 아니라, 파도에 실려서 수평선을 건너오는 소리 같기도 했다. ...(중략) 어둠 속에서 고개를 흔들어 그 종잡을 수 없는 소리를 떨쳐내면, 다시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그 소리는 되살아났다.
-22~23p


나는 인상 깊은 장면에 인덱스를 붙이거나 모서리를 접는 편인데, 초반에는 10페이지에 한 번씩 인덱스를 붙일 정도로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작가님의 필력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의 묘사는 미사여구를 길게 늘여놓지 않았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어떻게 간단한 묘사 하나도 이렇게 쓸 수 있는지 궁금했고, 나도 저렇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조정을 능멸한 죄, 조정의 기동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 나는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죽음은 절벽처럼 확실했다. 다만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문과 문초가 길지 않기를 바랐다. 죽어야 할 것들을 다 죽여서, 세상이 스스로 세상일 수 있게 된 연후에 나는 내 자신의 한없는 무기력 속에서 죽고 싶었다.
-26p


이 소설은 한 나라를 책임지고 지켜야 하는 장군이 내면 심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단순히 훌륭한 장군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이순신 장군이 어떤 사람이었을지 상상하게 만든다. 설득력있는 내면 묘사 덕분에 전투 내용을 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책에는 전투 자체뿐 아니라 전투 밖의 상황도 그려져 있다. 임금과 전령을 주고받으며 전투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이 전쟁으로 죽는 등 전쟁으로 인한 절망적인 상황도 가감없이 담겨 있다. 그 수많은 절망과 불확실성 속에서, 그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몇날 몇일 적과 싸워 왜적을 물리친 장군의 대단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 소통되지 않는 고통과 무서움의 운명 위에서, 혹시라도 칼을 버리고 적과 화해할 수도 있을 테지만 죽음은 끝내 소통되지 않는 각자의 몫이었고 나는 여전히 적의 적이었으며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나는 칼을 차고 있어야 했다. 죽이되, 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연안은 이승의 바다였다.
-124p


그는 이렇게 이승에서의 책무를 다하고 마지막 전투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자신에게는 적에게 죽는 것이 곧 자신의 자연사라고 말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그는 끝까지 무인다운 태도를 보이며 군관에게 북을 울리라고 외친다.


나는 전쟁물, 사극 둘 다 안 보는 편이다. 그럼에도 칼의 노래는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이는 이 작품이 단순히 이순신의 과거 영광을 보여주는 일대기가 아니라, 한 인간의 복잡미묘한 내면세게를 그려내는 서사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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