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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채식주의자

불쾌하지만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낸 한 편의 드라마

by 녹턴

<채식주의자>는 한강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큼, 당시 큰 반향을 이끌어낸 작품이다. 마치 작년 한강의 책이 싹쓸이 되었던 것처럼, 맨부커 상을 받았던 그 해에 <채식주의자>가 열풍이었던 기억이 어슴푸레 남아있다.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책이 채식주의자의 삶을 담은 에세이인 줄로 알았었다. ㅎㅎ.. 지금 생각하면 아주 큰 착각이다.)


24년 1월에 읽고 기록한 줄거리와 감상을 편집해서 올려본다. 최근에 읽은게 아니라 캡쳐본, 발췌본은 아쉽게 없다.. 어쩔 수 없이 스포일러가 많이 나오지만, 이 책은 스포일러를 당하고 봐도 충격적이고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1. 줄거리

채식주의자는 소설의 주인공 영혜를 말한다. 그녀는 어느샌가부터 악몽을 꾼다. 처음엔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살코기를 먹는 꿈을 꾸고, 나중에는 사람이 죽는 꿈까지 꾸게 된다. 꿈에서 무얼 느꼈는지 영혜는 더 이상 고기를 먹지 않는다. 고기를 먹지 않으니 영혜의 몸은 점점 매말라가고, 아름다웠던 모습을 잃어간다.

영혜의 주변인물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정상인의 범주에 들고 싶었던 남편은 영혜의 모습이 정상성에서 벗어난 이상현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잘 보여야 하는 타인으로부터 감추기에 급급한다. 꿈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은 전해지지 않는다. 영혜는 타인의 눈으론 보통의 채식주의자들처럼 동물을 위해 채소를 먹는 사람으로 비춰지고 만다.

영혜를 가장 잘 이해해야 마땅할 영혜의 부모조차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영혜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가부장으로, 고기를 거부하는 그녀의 이상한 고집을 꺾으려 영혜의 뺨을 때리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녀의 고집은 힘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었다. 타자를 해치지 않고 싶어서 그녀는 자신의 손목을 긋는다. 영혜가 자해를 하고 나서야 아버지는 영혜에게 더 이상 고기를 먹이려고 하지 않는다.

영혜는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며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을 찾으려 한다. 사건이 진행될 수록 사건의 충격과 수위가 커져가고.. 나름의 결말을 낸다.

2. 감상과 나름의 해석

내용이 많이 자극적이고, 피폐하다. 그래서 책을 빨리 읽긴 했다만, 책을 다 읽은 내 기분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그것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서 느끼는 찝찝함과 비슷했다. 도대체 작가는 무얼 말하고 싶은건가, 싶기도 했다.

육식은 다른 동물을 죽여서 먹는 것이다. 이는 한 생명을 빼앗는 잔인한 행위라고 확장해볼 수 있다. 영혜는 꿈을 꾼 이후로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택한다. 난 이 행동이 더 이상 남을, 나아가 다른 개체를 해하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마지막에 그녀는 채식주의자를 넘어서 나무가 되고 싶어한다. 동물로서의 본능을 거부하고픈 마음에서 기인한 것인가? 해석은 여러 개로 갈릴 것 같지만, 나는 본능이 키워드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영혜는 트라우마를 떨치기 위해 여러 사건을 만들고 끝을 향해 질주한다. 하지만 그 끝은 죽음이었다. 아무 것도 안 먹고 식물이 되고 싶어도, 그녀는 동물이라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본능을 어기려 하지만 어길 수 없는 부조리가 생긴다. 영혜가 형부와 만나며 인혜에게 상처를 입힌 것, 자기 자신이 결국 죽어버리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이 다소 찝찝하게 느껴졌다. 폭력성을 피하려고 악착같이 떼를 써도, 어쩔 수 없이 타인에게 또 해를 입히고 해를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본성을 마주한 것 같았다.

<채식주의자>는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책이다.

읽으면 기분이 찝찝해짐. 그래도 나름 생각할 거리를 준 재밌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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