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댄 라리머는 이미 6년 전부터 DeFi의 여러 개념을 고안해 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이 있다. 요즘 블록체인 업계를 보면 새로운 용어들은 많이 생기는 듯 하지만, 업계 전반이 침체되어있는 느낌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프로젝트와 해당 프로젝트를 만든 인물들을 재조명하면 분명히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인사이트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과거의 프로젝트를 돌아보던 와중에 눈에 밟히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다. 바로 스팀(Steem)과 Bitshares이었다. 오늘은 필자에게도 애증의 프로젝트인 스팀과 Bitshares, 그리고 이들을 만든 댄 라리머(Daniel Larimer)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우선 스팀과 Bitshares 시스템을 설계한 설계자의 철학적 배경을 알아봐야 한다. 물론 업계 고인물들은 이 인물이 어떤 철학적 배경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알겠지만, EOS만 접한 사람들의 경우 이 인물이 정확히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우선 스팀과 Bitshares 기술 책임자의 이름은 댄 라리머로 사토시가 레딧에서 활동할 당시 사토시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던 인물로 유명하다. 비트코인의 POW가 가진 한계점을 가장 먼저 지적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dPoS(위임지분증명)야 지금은 유명한 단어이지만 당시에 이러한 개념을 처음으로 고안한 인물 역시 댄 라리머였다.
지금 우리가 유용하게 쓰고 있는 개념들을 고안한 인물인 것을 차치하고도, 댄 라리머는 상당히 흥미로운 철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그가 자유지선주의(Libertarianism)를 따른다는 점과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하지 않고 급진적이라는 오스트리아 학파(Austrian School of Economics)를 신봉하는 개발자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자유지선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권한을 극대화 시키자는 정치철학이고, 그중에서도 오스트리아 학파는 가장 친-시장(Free Market Friendly)적이면서 반-국가(Anti-Nation)적인 학파로 유명하다. 댄 라리머는 본인이 오스트리아 학파임을 대외적으로 선포하고 그의 블로그에 자신이 왜 오스트리아 학파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곤 하였다.
그가 비트코인에 관심을 갖고 블록체인 필드에 뛰어든 이유도 블록체인이란 도구를 통해서 자유지선주의의 목표를 이루고자 함에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스팀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도 전에 이렇게 댄 라리머의 배경에 대해서 설명하는 이유는, 그의 프로젝트들을 다시 돌아보니, 생각보다 그의 철학들을 잘 녹여냈고 그러한 시도들은 굉장히 유의미한 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팀은 그의 자유경쟁 시스템을 잘 도입해서 녹여냈었다. 또한, Bitshares와 같은 과거의 프로젝트들을 잘 보면, 지금 많은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부분들을 5~6년 전에 먼저 고민했음을 느낄 수 있다.
지금에야 스테이블 코인이 유행을 지나 이제 너무나도 진부한 소리가 되었지만, 2018년도에 비트코인이 폭락했을 땐, 스테이블 코인이 마치 시장을 구할 수 있는 구세주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누구나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고자 하였고, 많은 학회나 사람들은 스테이블 코인을 연구하고 리서치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댄 라리머는 이보다도 4~5년 빠른 2013~2014년도에 이미 유틸리티 코인을 담보로 하는 스테이블 코인 시스템을 고안했었다.
“BitUSD(BitShares에서 발행하는 달러)는 요구 시 1달러만큼의 가치를 하는 자산을 주겠다는 증서와 같다. 옛날 은행의 증서의 경우엔, 이 가치는 금 또는 은을 기반으로 했다(양본위제). 그리고 비트세어의 경우엔 이 가치가 1달러의 가치를 하는 자산인 BitShares 암호화폐가 된다.”(은행으로써의 Bitshares - 자율분산기업의 기원(Bitshares as a Bank – The Origin of DAC)
- 댄 라리머, 2014년 블로그 게시물 中
댄 라리머는 위와 같이 밝히며 현재 유명한 스테이블 코인들이 가치 안정화 모델로 가져가는 모델의 모태를 마련했다. 지금이야 많은 이가 스테이블 코인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당연한 소리로 들릴지 몰라도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이 잘 발전하지 못했던 당시에 저런 생각을 통한 스테이블 코인 발행은 굉장히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혁신이라 칭하는 테라의 경우도 사실 기본적인 골자는 댄 라리머가 말한 저 모델과 매우 흡사하다. 테라 가격이 떨어지거나 오르면 그만큼의 가치를 가진 루나를 태우거나 발행해서 가치 안정화를 하는 것이니 말이다.
Bitshares에선 단순히 스테이블 코인(BitUSD)만 발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에 진작 댄 라리머는 Bitshares 토큰을 담보로 한 담보대출 서비스를 세상에 내놨다. 또한 비트쉐어를 통한 선물 거래에 대해서도 2014년 그의 블로그에서 친절하게 설명했다:
“Bitshares 코인을 담보하여 BitUSD 를 빌리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만약 BitUSD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본다면 일단 Bitshares 코인을 담보하여 BitUSD를 빌린 후 전량을 매도한다. 그리고 나중에 떨어진 이후에 BitUSD를 더 적은 양의 Bitshares로 재구매하여 원래 빌렸던 BitUSD를 갚는다. 우리는 이것을 공매도라고 하며, Bitshares를 통해 이런 식의 거래도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Bitshares 내에서 다양한 트랜잭션들이 발생하고 이에 따른 수수료들도 있다. 이런 수수료들은 Bitshares 라는 코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배당으로 떨어지는 시스템이다.
스팀도 상당히 재미있는 시스템이 존재하는데, 스팀파워(Steem Power) 임대가 바로 그것이다. 일단 스팀파워는 스팀 생태계 내에서 상당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자원이다. 스팀파워가 높으면 자체적으로 비즈니스를 할 수도 있고,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SteemHunt 같은 프로젝트들은 사업을 하기 위해서 다량의 스팀을 임대받아서 그 스팀파워로 큐레이션을 해줘서 초기 비즈니스를 시작하지 않았나.
스팀파워는 스팀 생태계에서 초기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자본과 같은 존재다. 그리고 스팀 자체적으로 이를 임대해주는 임대 시장이 있었으며, 그 이자율은 P2P로 정해지곤 하였다. 자선을 좋아하는 고래들은 파워를 무상으로 빌려주기도 하였고, 스팀파워 임대를 통한 비즈니스를 하는 고래들도 있었다. 이는 댄 라리머의 경제 철학을 잘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위에서 언급했듯 그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철저한 신봉자이므로 자율은행 시스템을 지지하는 사람이었고, 자율은행 시스템에선 중앙은행 시스템과는 달리 이자율이 고정되어있지 않고, 각자가 원하는 이자율로 경쟁을 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의 자율은행 철학이 잘 반영된 임대 시장임을 우리가 알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댄 라리머가 5년 전에 고안해 낸 이러한 시스템들을 일반인들은 이제서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dPoS를 위시한 POS 프로토콜들이 세상에 많이 나오면서 많은 개발자와 토큰 경제 설계자들은 스테이킹 되어있는 토큰을 프로토콜 내부적으로 어떻게 유동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댄 라리머는 스테이킹 되어있는 스팀을 필요한 유저들에게 이자를 받고 빌려주는 시스템을 5년 전에 고안해낸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댄 라리머를 사기꾼이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Bitshares, 스팀, EOS까지 그가 만들고 떠난 프로젝트만 해도 2개고, 이를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했을 것을 미루어보면 그런 비난이 아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댄 라리머는 지금 우리가 이뤄내고자 하는 개념들의 선구자적 인물이며, 우리가 지금에서야 신선하다고 이야기하는 개념들조차 이미 댄 라리머는 고안하고 고민을 해봤다는 사실이다.
DeFi 프로젝트를 만들 때 무엇을 참고해야 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는데,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Bitshares와 스팀을 추천한다. 물론 지금에서야 이 프로젝트들이 망해가지만, 개념만 조금 더 잘 다듬었다면 업계의 선구자가 될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과가 성공했든 아니든 이러한 개념을 5년 전에 먼저 정리하고 정립한 댄 라리머에게 존경을 표하면서 글을 마친다.
본 콘텐츠는 블록체인 인사이트 미디어 '노더'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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