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엘 Feb 02. 2024

[일상의 단상] 지나친 계획은 독이 된다


지나친 완벽주의를 추구하던, 완벽주의자 시절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던 것은 ‘계획’이다. 그냥 ‘계획’이 아닌 ‘완벽한 계획’.

일상에서든 회사에서든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완벽한 계획이 없으면 불안했다. 그래서인지 내 머릿속은 언제나 생각과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멍 때리는’ 시간 따위는 허용할 수 없었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면 다음날 해야 할 업무나 일정을 생각하며 잠들었고, 아침에 눈을 뜨면 당일의 계획을 세우느라 바빴다.

철저하고 완벽한 계획 덕분에 나의 업무수행도는 최상이었다. 상사나 동료로부터 언제나 업무를 잘 수행한다는 평가를 받았고 나 역시도 나의 업무수행도에 만족하며 지냈다. 일상 또한 완벽히 돌아가는 것 같았다. 퇴근 후나 주말의 일상 또한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계획을 잘 수행해 나가는 것이 나의 기쁨이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다. 그 철저한 계획들이 나중에 내게 독이 될 것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자 계획은 나의 인생을 돕는 것이 아닌, 나를 망가뜨리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계획에 과도하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별것 아닌 일조차도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지나치게 당황하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예전의 나는 분명 계획과 융통성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융통성이라곤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런 나의 성격은 2021년 가을, 갑작스러운 암 진단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내 인생의 계획에 암은 없었다.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어린 나이에 큰 병을 얻고서야 나는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다. 인생은 절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리 철저한 계획을 세워놔도 갑작스러운 사건 하나에 모든 것이 바뀌어버리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기나긴 치료와 수술, 그리고 회복의 과정을 거치며 나는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으며 지나친 계획은 독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획에 과도하게 집착하다 보면 어떤 일을 시작한 목적이나 의도가 상실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계획이 ‘목적’이 되어 방향성을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계획을 세운다. 오늘도 다음 주의 일정을 점검하고 계획을 세웠다. 내 계획은 여전히 남들보다는 꼼꼼하고 철저하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은 이제 더 이상은 그 계획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계획을 수정하고, 가끔은 과감하게 계획을 폐기해버리기도 한다.

인생의 모든 것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갖추고 있다. 계획 역시 그렇다. 계획 없는 삶은 불안하다. 하지만 지나친 계획으로 점철된 삶 역시 불안하다. 아니, 불안하다 못해 불행하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내게 주어진 검을 잘 활용해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