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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 Mar 05. 2024

바이닐 레코드

그루브를 타는 바늘

한정판이나 특별한 아이템을 수집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LP (Long-Playing record) 구매를 한 번쯤은 고려해 봤을 것이다. 원형의 음반 위에 아티스트의 색깔이 들어간 디자인 라벨, 그리고 앨범 재킷까지. 그야말로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요소가 한가득이다. 내 지인 중에는 턴테이블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LP 자체가 갖고 싶어 구매해 전시해 놓은 이도 있다. (물론 얼마 안 가 턴테이블도 나타났다.) 앨범커버에서 음반을 꺼내 작은 탐침(픽업바늘)을 얹으면 파인 홈을 따라가며 음악이 나오는데, 이렇게 멋진걸 어떻게 안 사고 버틸 수 있겠는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CD나 mp3 기기가 시대를 풍미하기 이전, 라이브가 아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이닐 Vinyl Record이었다. 바이닐은 재생 가능 시간에 따라 갈리는 EP (Extended Playing Record)와 LP 등을 모두 포함하는데, 더 오랜 시간 재생가능한 LP가 시장에 등장하면서부터는 주로 LP = 바이닐이라고 여겨지게 되었다. 바이닐은 이미 반세기 이상된 오래된 기술이지만, 여전히 소소하게, 그리고 꾸준히 유행하고 있다. 마니아층이 여전히 탄탄하고, DJ들이 믹싱을 위해 꾸준히 턴테이블을 사용해 왔기 때문에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최근 레트로의 열풍에 힘입어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요즘 힙한 동네라면 골목 안쪽에 레코드샵이 왕왕 자리를 잡고 있고, 현대카드가 한강진 쪽에서 운영하고 있는 바이닐 샵인 바이닐 앤 플라스틱 Vinyl & Plastic은 늘 사람이 붐빈다. 요즘 가수들도 한정판의 느낌으로 바이닐 앨범을 내곤 해서, 콜드플레이나 레이니, 테일러 스위프트의 최신 앨범도 만날 수 있다. (물론 한정판이라 그런지, 제조사가 아주 많지는 않아서 그런지 가격은 만만치 않다)   

손으로 한 장씩 넘기며 디깅하는 맛

요즘 출시되는 스마트폰들은 잘못 떨어트리면 액정이 산산조각 나지만 20년 전 애니콜은 물에 담그고 건물 3층에서 던져도 강건했듯이, LP도 화려한 기술은 아닐지언정 굉장히 강건하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주기적으로 세척을 해주지 않으면 바이닐이 손상되거나 잡음이 좀 발생할 수는 있지만, 플라스틱 코팅 위에 물리적으로 홈을 파낸 음반이라 웬만해서는 재생이 잘 된다. 그래서 중고시장도 잘 활성화되어 있어 꽤 오래된 앨범도 종종 만날 수 있다. 낡고 한쪽 귀퉁이가 헤지고 틑어진 앨범 커버를 멋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힙스터라면, 동묘앞이나 해외 플리마켓 같은 데서 디깅을 해보는 재미도 있다. 편견일지는 몰라도 유럽은 새로운 기술보다는 익숙한 기술을 선호하는 느낌이 강해서, 주말 플리마켓 같은 데서 종종 심심치 않게 바이닐을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 토리노 플리마켓에서 만난 오래된 음반들. Rollei XF35 촬영

바이닐은 PVC 위에 물리적으로 골을 만들어 헤드가 하드드라이브를 읽는 것처럼 픽업바늘이 골을 따라가며 음향을 LP로부터 읽어낸다. 이때 픽업 바늘이 따라가는 미리 파여진 홈을 그루브 Groove를 따라 움직이며 소리를 내는데, 이로부터 그루브를 탄다 라는 표현이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턴테이블이 있어야 재생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리고 턴테이블의 가격대가 상당히 높게 형성되어 있어 초기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다. 앨범 재킷과 원형의 턴테이블 자체가 워낙 예쁘다 보니, 벽에 걸어두고 장식효과로만 봐도 괜찮지만, 혹시 픽업바늘이 들려주는 음악을 들어보고 싶다면 입문용으로 오디오 테크니카의 AT-60XBT 제품을 추천한다. 10만 원 후반대의 가격으로 블루투스 옵션이 있는 턴테이블을 살 수 있어 집에 괜찮은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다면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집에 장식용 LP의 존재 가치를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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