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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 Mar 12. 2024

편지와 엽서

우편 소인과 손글씨에 담긴 기억

초등학교 시절, 다양한 편지지가 들어있는 잡지가 유행했었다. 그 잡지엔 촌스럽고 기발한 편지지들이 잔뜩 들어있었는데, 문구점에 그게 입고가 되는 날이면 바로 사서 절취선 모양대로 자르고 풀로 붙여 친구에게 편지를 써주거나 좋아하는 남학생 책상 서랍에 몰래 편지를 넣어두곤 했었다. 말하자면,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귀여운 낭만의 시대였다.


그 당시엔 그런 별 내용 없는 편지 이외에도 크리스마스나 생일 때면 서로 편지를 써서 친구들과 주고받고는 했는데, 그 편지들은 거의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며 편지들은 이메일로, 네이트온 쪽지로 진화를 거듭하다 10년 전쯤 카카오톡과 DM이 우리 생활에 뿌리 깊게 자리 잡으며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는 업무 이외엔 서로 이메일 보내는 것조차 필요 없어질 만큼 SNS로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으니, 손으로 편지를 쓰는 이들은 잘 없다.


하지만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는 스크린에서 느낄 수 없는 감정과 상황을 종이에 담는다. 이모티콘이 표현할 수 있는 감정보다 편지지에 다급하게 휘갈겨 쓴 글씨나 번진 눈물자국이 표현하는 감정의 깊이가 더 깊게 느껴지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래된 편지는 매번 정리하겠다 마음 먹어도 끝끝내 못 버리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와중 머물렀던 빌바오에서 보낸 엽서.

주변에 편지를 쓰는 일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우편을 보내는 일은 종종 있다. 나는 여행을 가면 꼭 나에게 엽서를 쓴다. 되도록이면 우체국에서 바로 보내는 게 아닌, 우표를 따로 사서 붙여 우체통에 엽서를 직접 넣는 방식으로. 우표를 사러 가는 수고라면 미리 엽서를 써서 가져가서 한 번에 바로 붙이면 될 것을, 굳이 우체통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꽤나 단순하다. 요즘은 전 세계 어디든 우체통이 많이 없어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나라마다 다르게 생긴 우체통을 보는 재미가 있기도 하고 그 우체통에 넣었을 때 “오겠지? 어떤 집배원님이 꼭 수거해 가시겠지?” 하는 설렘도 있기 때문이다.


집에 무사히 도착한 엽서 위 우편 소인이 우표 일부에 걸쳐 찍혀있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원래는 우표 재사용을 막기 위한 방책이지만, 나는 이 겹쳐 찍힌 소인이 내가 산 엽서와 우표를 한 개의 개체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우편 소인의 날짜와 출발지가 엽서와 우표를 만나 내 여행의 일부가 되어 나에게 온다니. 그 어떤 다른 기념품도 이 엽서만큼 소중한 기념품은 없다. 그 여행의 시간과 장소가 그대로 고정되어 나에게 예쁜 엽서와 함께 오니까.

엽서를 고르게 된 계기: 구겐하임 빌바오가 너무 멋져서. 이런 사소한 이유조차 여행 기억의 일부가 되어 나에게 온다.

엽서에는 내가 여행에서 느끼고 경험했던 것을 일기처럼 쓸 때도 있고, 단순하게 인상 깊었던 단어만 나열해 두기도 한다. 일례를 들자면 2022년 여름, 독일 마인츠에 갔을 때 보낸 엽서에는 볼펜으로 딱 단어 세 개만 휘갈겨 적었다. “Montag 월요일” “Sontag 일요일” “Bratkartoffeln 감자튀김”. 이 세 가지 단어는 그 어떤 말보다 그 당시 내 독일 여행을 잘 축약하는 단어들이라, 이 엽서만 보면 그저 웃음이 난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보내기 낯설다면, 낯선 여행지에서 여행 기념품의 일환으로 나에게 엽서를 보내는 것을 추천한다. 우표를 사서 붙여도 좋고, 엽서를 우체국에서 바로 보내도 좋다. 예쁜 엽서에 소인은 함께 남으니까. 내용도 편하게 쓰고 싶은 것만 쓰면 된다. 손으로 그때 느끼는 감정을 담뿍 담아 써서 집에 도착했을 나에게 선물로 보내주면, 나중에 그 엽서가 썩 좋은 여행의 기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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