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추억할 수 있을 만큼만 기억할 수 있게
가끔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긴 하지만, 아무래도 메인 기록 소스는 휴대폰이다. 예전엔 폰카메라가 지금만큼 화질이 좋지 않았어서 사진을 찍으려면 디지털카메라를 따로 챙겨 다녀야 했는데, 손에 카메라가 없을 때 갑자기 사진 찍을 일이 생기면 눈과 마음에만 담아야 했다. (꼭 사진 찍고 싶은 순간은 손에 카메라가 없을 때 많이 온다) 애플과 삼성이 스마트폰 기술을 경쟁적으로 발전시키며 카메라 화질은 어느덧 소위 똑딱이라고 부르던 디지털카메라를 넘어섰고, 이제 대부분 사람들은 나와 같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이제 휴대폰이 인간의 손에 연결된 또 다른 장기라고 생각될 만큼 다들 휴대폰과 일체화된 삶을 살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자연스레 많이 찍게 된다. 밖에서 밥을 먹을 때면 인물 모드로 각 메뉴마다 사진을 찍고, 걷다가 길냥이가 눈에 띄면 순식간에 앨범에 30장 정도의 사진이 쌓인다. 이렇다 보니 사진첩에는 항상 사진이 흘러넘쳐 휴대폰을 바꿀 때마다 용량이 큰 휴대폰을 선호하게 되고, 새로 산 휴대폰 용량이 크니 사진을 마음껏 더 많이 찍게 된다. 이러한 긍정 피드백으로 내 아이클라우드 사진 용량은 꾸준히 늘어나는 중이다.
엄지로 쉽게 툭툭 동그라미 버튼을 눌러 찍어두는 사진들은 인화하지 않으면 다시 보지 않게 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가끔 ios (아이폰 운영체제)가 예전 사진을 모아 영상을 만들어 주지만, 그때 잠시 보고는 또 사진들의 존재를 잊어버린다. 그렇게 기억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게 싫어 몇 년 전부터 매해 연말이면 그 해 사진을 정리한다. 사진 200장이 들어가는 앨범을 사서 딱 200장 만을 인화해 꽂아 넣는다. 처음에 앱 사진첩에서 사진을 넘기다 보면 한 800장쯤 인화해야 할 것 같지만, 거르고 걸러 인화해 앨범을 정리하고 나면 꼭 남겨야만 할 소중한 기억들만 남는다. 뇌가 기억하고 저장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서 한정된 수량의 사진만 골라 인화하면 딱 적정한 선에서 한 해를 요약하는 느낌이다.
연말에 한 번, 사진을 고르고 인화하며 한 해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또 다음 해에는 어디에서 어떤 기억을 만들어가면 좋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다시는 보지 않을 사진을 무작정 쌓기보다는, 가끔 사진 앱을 정리하고 몇 장을 인화해 보길 권한다. 어쩌다 실수로 비슷한 사진을 인화하면, 그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에게 선물하는 즐거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