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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03. 건강과 술

by Noelle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술이 건강에 해롭다는 걸. 하지만 아는 맛이 더 무서운 법이라고, 다이어트가 힘든 것처럼 절주도 어렵다. 밥은 매일 먹어야 하는데, 삼겹살을 먹으면 개운하게 입을 씻어내려 줄 소주가 당기고, 광어 세비체를 먹을 땐 쨍한 산도의 화이트 와인이 생각난다. 매 끼니 술을 곁들이는 건 아니지만, 맛있는 한 끼를 먹을 땐 자연스레 좋은 페어링으로 그 끼니를 더욱 완전하게 즐기고 싶어진다.


나는 취하는 걸 즐기지 않는다. 취기가 올라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느낌도,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는 것도 별로다. 특히 누웠을 때 멀미 나듯 하늘이 뱅뱅 도는 느낌이 가장 싫다. 그래서 30대에 들어서고 난 후부터는 되도록 과음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느 정도 마시고 나면 잔을 비우는 속도를 더 늦추고 어려운 자리가 아니라면 적당한 때 일어난다. 하지만 과음을 안 할 뿐, 매일 저녁식사에 꼭 알맞은 술을 한두 잔 곁들이는 편이었고, 맛있는 와인이나 위스키 한 잔이면 하루의 피로가 탁 풀렸다.


퇴근 후 한 잔을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며 나름 적절한(?) 음주 생활을 산다고 생각했는데, 매일 한두 잔 가볍게 반주 마시던 게 퇴적되었는지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전혀 생각치 못한 방향으로.


어느 날부턴지 생리 주기가 유독 자주 틀어져서 잦은 해외출장과 무리한 일정이 원인인 줄 알고 살았는데, 해외출장의 쓰나미가 지나가고 나서도 원상 복귀하지 않는 주기에 걱정되기 시작했다. 결국 죽을병 아니면 별로 찾고 싶지 않은 산부인과를 방문해 피검사를 받아보았더니, 프로제스테론 수치가 낮게 나온다고 했다. 호르몬 약을 처방받고 나오는 길, 남편이 논문을 한 편 보내주며 말을 꺼냈다. 알코올이 이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같이 주 1회로 술을 줄여보자는 남편의 말에 바로 반기를 했다. 회식이 있거나 약속이 있는 주는, 우리끼리 맛있는 거 먹을 때 뭘 마시란 말인가. 어렵사리 주 2회를 얻어내고 함께 그 약속을 지키며 산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평소에 술 안 마시는 사람이 읽으면 대체 이게 왜 어렵나 생각이 들 것 같다. 피자나 치킨 먹을 때 스프라이트나 콜라를, 케이크 먹을 때 아메리카노가 없는 느낌이다.)


현시점 기준, 절주로 인한 메리트는 크게 체감되는 바가 없다. 기존에도 과음하는 편이 아니었어서 뚜렷한 건강상의 변화는 없고, 가끔 식사할 때 ‘아 탁주랑 딱인데’ 싶은 메뉴라도 레몬이나 에사비를 탄 탄산수만 마셔야 하는 절망감만 늘었다. 그래도 스스로의 절제심에 나름 뿌듯하기도 하고, 뇌의 노화라도 느려지겠지 하는 어렴풋한 기대감에 기대어 여전히 주 2회를 지키고 있다. 다이어트도 평생 하는 거라던데, 절주도 비슷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오래 즐기기 위해, 나이 들어서도 화덕피자에 키안티를 곁들여 마실 수 있도록, 지금 좀 자제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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