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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10. 정답

by Noelle

사는 데 정답은 없다고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정답은 항상 있었다. 나에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정답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을 가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적당한 시기에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 정답을 무시하고 경로에서 이탈하면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추락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대학을 가고, 부족한 지식과 모자란 학점을 채우려 박사 학위를 하고, 소위 대기업에 취직해 그럭저럭 매일을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노란 벽돌길을 따라 열심히 걸어 도달한 에메랄드 시티는 정말 행복한 곳인가. 학창 시절, 부모님은 나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나면 그때 하고 싶은 걸 뭐든 취미로 하면 된다고 했다. 사실 이 말도 일리가 있다.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다른 방향을 돌아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매일 새벽 출퇴근 셔틀에서 졸다가 버스가 정차하면 그 어떤 감흥도 없이 기계적으로 일과를 시작하는 요즘, 다른 길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피할 수가 없다.


우리 부모님은 정답대로 살아왔고, 당연히 그 안정적인 삶을 자식인 나도 누리길 바라셨다. 부모님이 제시하는 정답의 이면에는 나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 깔려 있음을 나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안전한 선택만 하며 살아오면서 정답이 아닌 길로 가면 뭔가 크게 잘못되리란 두려움은 점점 더 강화되어, 나라는 사람의 특성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위험을 감수하거나 사회적인 “정답”이 아닐지도 모르는 선택은 못하게 되어버렸다.


나는 죽기 전에 뭘 이뤄보고 싶을까. 모든 것을 걸어볼 만큼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나라는 사람이 살면서 뭘 이루고 싶은지 충분히 탐색하고 시도해볼 여유가 없었다. 물론 공부만 하고 산 것은 아니다. 술 먹고 흥청망청 잘 놀기도 했다. 다만 전체적인 흐름에서 벗어나는 건 허용되지 않았다. 회사에서 건강한 실패를 권장하지만 실제로 실패하면 위에서 날 가만두지 않는 것처럼, 정답이 아닌 다른 선택지를 골라 실패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35살이 된 지금도, 그래도 사람은 아이를 낳아야 된다는 말을 들으며 사회의, 부모님의 정답으로부터 벗어나질 못한다. 답은 ‘결혼하고 안정적인 직장이 있으니, 이제 아이를 낳아야 행복하다’로 정해져 있으므로. 그리고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이런 아주 개인적인 선택에서조차도, 나는 정답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기가 두렵다. 그 선택이 나에게 맞든 맞지 않든, 그게 “정답”이니까.


주변을 둘러보면 요즘은 유치원생들에게조차 올바른 답이 있는 것 같다. 영어를 잘해야 하고, 밸런스 있게 성장하기 위해 미술학원도 다녀야 하며, 승마나 하키 같은 걸 배워야 한다. 부모는 자식을 올라운더 인재로 키우기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하며 언젠가 이 아이가 “정답”으로 안정되고 인정받으며 살아가길 바란다. 이 아이들은 커서 나와 다르게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과감함이 있을까? 저 친구들의 인생이라는 문제집 끝에, 정답과 해설집이 단 하나의 답만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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