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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14. 일요일에 하는 토요일 예찬

by Noelle

토요일은 마음이 편안하다. 다음날 출근도 없고, 조금 어영부영 보내더라도 일요일 하루가 더 있으니 꽤 안심이 된다. 특히 알람 없이 눈을 뜨는 조용한 아침은 그 무엇에도 비할 바가 없다. 일요일 오후 즈음부터는 나도 모르게 출근하면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 한켠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데, 토요일은 출근 따위 다른 세상 속 남의 일인 것 마냥 평화롭고 행복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몇 주 전 토요일엔 아침에 가볍게 한강을 뛰고 회사 동료의 결혼식을 다녀와 달콤하게 낮잠 한숨 자고 나니 남편이 시원하게 칠링된 스파클링 와인을 한 잔 내어줬다. 잠시간 식탁에 앉아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소파에 누워 가벼운 추리 소설을 읽고 있자니, 이게 행복인가 싶었다. 시간이 좀 지났는데도 그날 베란다 식물들 사이로 쏟아지던 햇살은 기억 속에 유독 따스하고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야근으로 가득한 한 주를 보낸 뒤 마주한 이번 토요일은 잠을 원 없이 잤다. 피로가 퇴적된 건지, 비가 와서 몸이 무거운 건지 보통의 다른 토요일보다 더 늦게 일어나 침대에서 한참을 뒹굴거렸다. 주중에 신경을 많이 못 써준 식물들에게 죄책감과 애정이 담긴 물을 듬뿍 주고, 비 오는 창 밖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하다 보니 금방 약속 시간이 다가왔다. 이 평화를 깨고 나가는 게 조금 귀찮았지만 친구들과 만나면 또 즐거울 것을 알기에 맘을 다잡고 씻었다. 스위치온 식단을 하는 친구, 입덧으로 힘들어하는 친구, 아토피 때문에 한약을 먹기 시작한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요즘 회사 밥과 식단에 대해 한참을 떠들고는 시간이 더 늦어지기 전에 남편과 만나 가을 와인 페어를 다녀왔다. 올해는 수입사 라인업이 축소되며 리스트가 다소 아쉬워졌지만, 평소 찾아보기 어려웠던 와인이나 흥미로운 와인 위주로 시음하며 아직 밝은 시간, 와인잔을 쥐고 야외를 활보하고 다녔다. (밝은 대낮에 술을 마실 수 있는 것도 토요일의 큰 특권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느긋하고도 꽉 찬 하루를 보내면서, 일요일이 오기 전 한 주간 누적되었던 피로와 잡생각을 훌훌 털어냈다.


하루를 좋아하는 일로 가득가득 채우고서도 죄책감 없이 맞이할 수 있는 다음날이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인지, 토요일은 그래서 더없이 소중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일요일 저녁에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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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