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 공지영
넌 스무 해를 살았니?
어쩌면 똑같은 일 년을 스무 번 산 것은 아니니?
네 스무 살이 일 년의 스무 번의 반복이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야.
띵.
일상은 원래 지독할 만큼 지루하고 반복적인 것 아니었나. 나의 하루하루는 어땠지?.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많은 생각들이 세탁기 속의 빨래처럼 뒤엉켜 정리가 되질 않는다. 천천히 하나씩 빨래를 꺼내, 탁탁 털어 정리해 본다.
제일 먼저 꺼낸 빨래는 위로. 나만의 길을 가겠다며 고집을 부렸던, 그러나 결국 흙먼지만 뒤집어쓴 채 방황하는 나를 이 책은 조용히 격려했다. 나는 그저 인내심이 부족한 철부지가 아닐까, 나는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에 불과한 게 아닐까, 하는 절망감은 나를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죄책감을 깨고 스스로 자신감을 갖는 일이 시급했다.
네가 이 시기를 좀 잘못 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도 돼. 너는 아직 젊고 또 많은 기회가 있을 거야.
이 말 덕분에 나는 사회의 잣대가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다시 나를 '청년'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
안정된 직업, 안정된 직장, 안정된 가정과, 실패 없는 인생을 노래하는 친구들 틈에서 내가 돌연변이는 아닐까 걱정할 때, 집에 돌아오면 한밤중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안정된 것이라고는 마음 하나뿐인 당신이 거기 있습니다.
작가의 딸로 이 책에 등장하는 위녕의 고백은 어느새 나의 진심이 돼 버렸다.
하지만 그 뒤를 잽싸게 따라 나온 것은 뿌리칠 수 없는 불안감.
사랑하는 딸, 도전하거라. 안주하고 싶은 네 자신과 맞서 싸우거라.
그래도 불안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리는 것은 역시나 쉽지 않다. 앞으로 내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까, 혹시 이대로 내 삶은 꼬일 대로 꼬여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초조하기만 하다. 이런 걱정에서 해방되는 방법은 빨리 또 다른 조직에 편입되거나 아니면 잠을 자거나 둘 중 하나다. 잠을 많이 잔다는 것은 스스로 감당하기 벅찬 문제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암시다. 나는 요즘 허리가 끊어지도록 잠만 잔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놓아버리고 불안정의 상태에 빠져들고, 다시 그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나의 모순 때문이다. 사회와 조직이라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잔인하게 짓밟는 ‘안정 아닌 안정'을 거부하면서도 나는 그 '안정정'을 누리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이다. 잡지도 놓지도 못하는 어정쩡함. 어디로 가야 할지 확실한 목적지를 잡지 못하니 나는 계속 같은 자리를 빙빙 돌며 전진하지 못한다.
마지막 딸려 나온 옷은 괴리.
당신이 제게 했던 말처럼, 사랑이 나에게 상처 입히는 것을 허락하겠습니다. 넓은 사막에 혼자 버려진 것처럼 방황하겠습니다. 넘치도록 가득한 내 젊음과 자유를 실패하는 데 투자하겠습니다.
위녕의 말을 따라 나도 목이 터져라 소리쳐 보지만 상처와 방황에서는 누구나 고통스러운 법이다. 현실과 이상은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고통을 내가 자초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많은 고민들이 잠시도 나를 편히 쉬지 못하게 만든다. 나 역시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살듯 집과 회사를 오가며 그저 그렇게 사는 인생을 원하는 것이 아닌지 의아스럽다. 아니, 이제는 그런 삶이 멋진 삶, 성공한 삶이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나는 이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네 앞에 수많은 길들이 열려 있을 때, 그리고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모를 때, 되는대로 아무 길이나 들어서지 말고 앉아서 기다려라. 네가 세상에 나오던 날 내쉬었던 자신의 깊은 숨을 들이쉬며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네 마음속의 소리를 들어라. 그러다가 마음이 네게 이야기할 때 마음 가는 곳으로 가거라.
작가의 말에 따르면 나는 지금 더 기다려야 할 때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울림이 퍼지는지 찾아내야만 한다. 세상의 손가락질과 내부로부터의 자책에서 벗어나 나는 내 영혼의 간절한 소망에 집중해야 한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 그리고 설사 내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해도 그것을 이룰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삶이란 결코 만만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