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목수정
그녀는 바람처럼 자유로운데, 나는 철창 안에 갇힌 사자처럼 한 발자국도 밖으로 걸음을 뗄 수 없다.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훌쩍 떠나는데, 가진 것도 없는 나는 그나마 지금 내 손에 있는 것들을 놓지 못해 아등바등이다.
달리 생각하면, 나에게 익숙한 모든 질서와 언어와 관계에서 일탈한 셈이었다. 그것은 갖고 있던 많은 유리한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손에 가득 쥐고 있는 한, 결코 새로운 것을 손에 쥘 수 없는 법이다.
그 어떤 세월도 또 다른 세월을 위한 볼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의 20대, 30대, 40대는 모두 똑같이 소중하고 나의 모든 시간들에 적당한 노동과 적당한 즐거움을 배분해야 할 의무가 내게 있다.
난 용기가 없어서 그런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떠나기 위해서는 무슨 대안이 있어야 하니까.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 그녀는 또 나를 혼내겠지. 다른 시간을 위해 현재의 시간을 볼모로 잡아서는 안 된다고 했으니까. 그럼 이런 대답은 어떨까. 훌쩍 떠나는 것도 큰 용기지만, 못마땅한 지금의 내 모습 그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큰 용기라고. 물론 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위해. 석사 과정을 밟고 새로운 학위를 얻어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장밋빛 미래는 아니더라도, 지금과는 무언가가 달라지겠지. 만만치 않은 유학생활을 견디는 건 분명 용기다. 하지만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이 이 땅에서 현실을 꾸역꾸역 살아내는 것 역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팩, 돌아서는 것도 용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멸과 굴욕을 견디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녀에게는 있고 나에게는 없는 그것은 뭘까. 뻔뻔함. 뻔뻔함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이 말을 들으면 "뭐라고? 뻔뻔함이라고? 야! 넌 충분히 지금도 뻔뻔해!",라고 소리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나의 솔직한 속마음을.
관습에 저항한 자에게 끊임없이 날아들 전방위 공격이 내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게 할 뻔뻔한 자아를, 완전히 다른 궤도의 삶을 구축했는지 여부가 선택의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아팠다. 나를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자들의 무례한 목소리가. 너는 왜 고분고분하지 못하고 딴지를 걸어서 분란을 일으키냐는 '평화주의자'들의 못마땅한 눈빛이. 날 향한 돌팔매와 웅성거림이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고 심지어 자책하게 만들었다.
그렇다. 난 '모난 돌'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은 맞다. 나는 수시로, 어디서든, 누구로부터든 두들겨 맞고 비난을 받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세 보이는 척했으나, 사실은 참 아팠다. 너무 아파서 나는 모난 돌인데 동그란 돌인 척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아 보기도 했다. 모난 걸 감추어 보고자 이불을 뒤집어써보기도 하고 목도리를 해보기도 했지만 오히려 더 눈에 띌 뿐이었다. 게다가 거추장스러운 이불과 목도리로 나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러다 결심했다. 그냥 스스로 나 자신을 인정해 주자고. 괜히 어설프게 남들 흉내를 내지도 말고, 내 모습을 스스로 미워해 다른 사람처럼 되려고 애쓰지도 말자고. 그냥 내 모습을 내가 받아들여 주자고.
나에게도 약한 모습이 있구나. 새삼스레 나의 인간적인 모습에 따뜻한 시선이 머문다. 하지만 감성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건 여기까지. 어차피 동그라미가 못될 바에야 모난 돌은 모난 돌임을 깨끗하게 인정하자. 오히려 더 날카롭고 더 까칠하게 날을 세워야지. 그래서 내 뒤에 올 모난 돌들을 위해 망치를 맞아야지. 신경 날카로운 고슴도치처럼,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빵빵해진 목어처럼.
그래, 나는 모난 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