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 아일랜드에서는 쉽게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주차장 바로 앞에도 얕은 바다가 있고 산책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바다에 인공 둑을 설치한 해수욕장을 볼 수 있다. 인공 둑을 설치한 해수욕장은 파도가 들이치지 않아 어린아이들이 놀기에 적당하다. 관광객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바다라 하와이안들이 이 곳을 자주 찾는다.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와이키키 해변이 피곤한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곳이다.
하와이에 와서야 비로소 바다의 매력을 알게 됐다. 땀이 줄줄 흐르다가도 바다에 풍덩 뛰어들어 어린아이처럼 물장구를 치다 보면, 뜨거운 여름에 시원한 수박을 한 입 베어 먹은 것처럼 더위가 싹 달아난다. 모래사장에 가만히 앉아서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아이들은 신이 나 바다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느긋하게 혼자 산책을 하는 사람도 있고 모래 놀이를 하는 청년들도 보인다. 바다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모래사장에서 쉬고 있는 엄마들도 많다. 집에 갈 시간이 됐는데 더 놀겠다고 떼를 쓰다가 혼나는 풍경에는 슬며시 웃음이 난다.
하와이 어디서든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다. 우리 집에서도 매직 아일랜드까지는 약 15~20분 정도. 한국에서는 경포대나 해운대를 가려면 몇 시간씩 차를 타고 가야 한다. 좁은 차 안에서 밀리는 차들을 창 밖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이렇게까지 해서 꼭 바다에 가야 하나, 자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렇게 고생해서 간 바다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말 그대로 물 반, 사람 반이다. 게다가 쓰레기에, 시끄러운 음식점에, 모처럼 큰 맘먹고 바다에 가도 즐겁기는커녕 내가 여기 왜 왔을까 그냥 집에서 쉴 걸, 후회만 밀려온다. 이래 저래 한국에서는 큰 맘을 먹어야 해 바다에 가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반면 하와이에서는 가까운 곳에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은 바다가 많아 자꾸만 바다에 나가고 싶다.
갑자기 웬 바다 자랑. 그래서 하와이는 좋고 한국은 안 좋다는 거냐. 그런 게 아니다. 한국이, 그립다. 이렇게 좋은 바다가 옆에 있는데도 자꾸만 한국 생각이 많이 난다. 하와이는 물가가 비싸다. 과일이나 야채 가격도 비싸고 외식 한 번 하려 해도 한국에서는 2000~3000원 정도면 먹을 수 있는 떡볶이가 15달러나 한다. 한국 음식 아닌 다른 음식도 세금에 팁을 포함하면 1인당 최소 20달러 정도는 예산을 잡아야 한다. 비싼 하와이 물가가 벅차다. 게다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 사실이 제일 슬프다.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어야 친구가 생길 텐데, 내 영어실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뉴스를 봐도 무슨 소린지. 이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오늘의 이슈는 뭔지, 각 집단에서 어떤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난 당연히 모른다. 자연히 나에게는 '우리'가 없다. '우리'가 사라지니, 신기하게도 내 존재도 희미해지는 것 같다. 화내야 할 정치 현안도 없고 내 옷차림이나 행동을 지적하거나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눈치 봐야 할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니 홀가분하다. 그리고 동시에 나 자신이 조금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든다.
외로운 걸까, 지금 나는.
외로운 사람일지언정 바보가 되지는 말자고 다짐한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하와이를 그리워한다거나, 지금 하와이에서 살면서 한국을 그리워하는. 그래서 결국엔 어느 곳에서도 살고 있지 않게 되는 바보. 대신 지금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충분히 누리기. 다행히도 조금씩 이 곳 생활에 적응하며 친절한 이웃들도 몇몇 알아가는 중이다. 한 이웃은 내가 수영을 못한다고 말하자 하와이안 중에는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없다며 유명한 수영 학원을 내게 소개해 주었다. 그 이웃은 갑자기 수영 학원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며 굳이 집에 돌아가 시간을 내 수영 학원 이름을 검색하고 경비실을 통해 나에게 쪽지를 전해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고맙고 친절한 사람들이 내 옆에 있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불편함이나 낯섦, 외로움, 존재의 희미함 등을 당당히 견뎌보기로 한다.
나에겐 바다가 있다. 언제든 첨벙 뛰어들 수 있는 바다. 이 참에 수영이나 배워볼까.
나도 하와이안이니까.
뒤돌아 보거나 여기 없는 걸 자꾸 욕심내느라 힘들어 하지 말고. 대신 오늘은 바다에 둥둥 떠서 하늘이나 실컷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