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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Sep 11. 2018

맹순이는 잘 있을까.


내가 사는 아파트 장점 중 하나는 아파트 뒤편에 있는 공원이다. 탁 트인 넓은 잔디밭과 무성한 나무. 하와이에 와서 자주 보는 풍경인데도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한적한 공원에서 혼자 조용히 하늘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금세 흐른다. 업무를 적당히 부풀려 회의를 하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재미 하나도 없는 연예인 소식이나 과장님 험담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느라 소란하고 부산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스르르, 잠이 온다. 잠이 올 정도로 나른해질 만큼 앉아 있었는데 공원에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정도 공원이야 하와이 어느 곳에서든 쉽게 만날 수 있어서일까.



그래도 저녁에는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이다. 하와이 사람들에게 강아지는 특별한 존재다.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시킨다. 여기서는 아침이든, 오후든, 저녁 먹고 난 후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만날 수 있다. 어떤 한 이웃은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 때문에 이 아파트를 선택했다고 한다. 아파트 안에 공원이 있어서 강아지를 산책시키기에 적합하다고. 한 살도 안 된 갓난아기를 키우는 세실리아는 아기 키우는 것도 힘들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강아지를 데리고 이 곳을 산책한다. 잠자고 먹고 쉴 시간도 없을 텐데 어떻게 매일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걸까, 신기하다.



내게도 맹순이라는 강아지가 있다. 대학 시절 내내 준비했던 사법 시험에 실패하고, 취직 준비는 하나도 안 해 놨고, 학점은 엉망이고, 졸업은 코 앞에 닥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시절. 헛헛한 마음에 정 붙일 강아지를 한 마리 입양했다.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맹순이와 함께 했던, 첫 산책이 아직도 선명하다. 맹순이는, 적당히 목줄을 늘어뜨린 채 주인과 거리를 유지하며 자연스럽게 걷는 다른 강아지와 달리, 자꾸 내 발 밑에서 맴돌았다. 나는 맹순이를 밟기라도 할까 봐 발걸음을 제대로 떼지도 못했다. '맹순아, 이러면 우리가 못 걸어.' 이렇게 달래도 맹순이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첫 산책은 이렇게 집에서 몇 걸음 가지도 못한 채 실패했다. 그땐 몰랐는데 맹순이는 아마 처음 바깥나들이가 조금 무서웠나 보다. 그래서 주인 발 밑을 맴돌기만 했나 보다. 몇 번 더 산책을 나갔다. 그러자 맹순이도 다른 강아지들처럼 신나게 산책을 할 수 있게 됐다. 나는 꽤 자주, 시간이 날 때마다 맹순이를 데리고 산책을 했다.  



누구나 그렇듯, 그런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아 시들해졌다. 겨울이면 춥다고, 여름이면 덥다며 산책을 나가지 않게 됐다. 회사일이 힘들다고, 쉬고 싶다며 맹순이 산책을 미루고 미뤘다. TV를 봐야 해서, 데이트가 있어서, 친구를 만나야 해서 등등, 맹순이를 산책시키지 못할 이유는 많고도 많았다. 결국, 맹순이는 1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만 바깥 산책을 나가게 됐다. 더 뻔뻔하게도 나는, 맹순이를 엄마에게 맡긴 채 하와이로 오게 됐다.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말아야겠다. 나는 무책임한 사람이니까. 마음 둘 데가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강아지를 입양해 놓고는 뒷감당은 전혀 하지 못한다. 갓난아기를 키우면서도 꼬박꼬박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아기 엄마를 볼 때마다 맹순이 생각이 난다. 저 아기 엄마는 얼마나 자기 강아지를 사랑하길래 매일 저녁 강아지를 산책할 수 있는 걸까. 잠든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기어이 강아지와 산책하러 나오는 아기 엄마와 같은 정성이 나에게는 왜 없는 걸까.



사랑을 한다는 건 귀찮음을 이겨내는 일이다. 

그저 애정을 쏟고 마음을 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귀찮고 피곤하더라도, 잠을 못 자더라도, 춥더라도, 덥더라도 꾸준히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루 종일 나만 기다리는 강아지에게 산책을 선물할 수 있어야 한다. 혼자서는 밖에 나가지 못하는 강아지의 갑갑함을 생각하며 저녁을 먹은 후에는 기꺼이 다시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 게다가 그 마음이 잠시 잠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져야 한다. 마치 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밥을 먹듯이. 그게 사랑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성경은 사랑을 위와 같이 정의했다. 으악! 너무 길고 복잡하다. 계속 읽어 내려가도 사랑에 대한 정의가 끝나지 않는다. 고통이나 고문 수준이다. 참아야 하고, 온유해야 하고, 성내지 않아야 하고, 견뎌야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읽어 내려가면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칠 수 있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을 곰곰이 뜯어보면 사랑은 쉽지 않다. 지금의 내 모습과 정반대로 행동해야 한다. 급하고, 불 같고, 요만큼 싫은 소리 들어도 팩, 돌아서는 게 난데.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책임감 없는 내 사랑 때문에 누군가는 맹순이처럼 외롭고 서글퍼지지 않을까. 맹순이도 세실리아 같은 주인을 만났더라면 매일 저녁 신나는 발걸음으로 바깥공기를 마실 수 있었을 텐데. 맹순이는 잘 있을까. 여기 공원에 데리고 오면 신나서 헉헉대며 뛰어다닐 텐데.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보고 싶고 미안하다. 맹순이도, 그리고 내가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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