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장소인데 일본인들이 하와이를 방문하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Moanalua Garden. 일본의 어느 대기업 회장이 이 곳을 지나가다가 나무를 발견했는데 나무가 너무도 멋져 그 주변을 공원으로 만들었단다. 이 나무는 Monkey pod이라는 나무인데, 나이는 130년, 높이는 25m, 직경은 40m다. 그늘 아래에는 사람이 100명이라도 넉넉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나무는 우람하다. 공원을 조성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회장은 이 나무를 기업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덕분에 일본 사람들은 모두 이 나무에 대해 알게 됐고, 하와이로 여행을 오면 꼭 한 번 이 곳을 방문한다고 한다. 멋진 이야기. 회장에게는 좋은 나무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었다.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나무를 위해 기꺼이 경제적인 지원을 할 줄 아는 넉넉함도 있었다.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은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흙을 비집고 나오는 작은 새싹을 알아챌 수 있어야 하고 또 겨우 그까짓 것에 기뻐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일락 말락 새끼손톱만큼 더 자란 나무의 키와 어제와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이파리들의 색깔 변화를 예리하게 눈치챌 수 있어야 한다. 흙을 돋아주고 지지대도 만들어 줘야 하고 물도 거르지 않고 충분히 줘야 한다. 이런 일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정성을 가득 주어도 나무는 고맙다고 한 번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을 돌보아 주는 사람이 다가와도 반갑다, 인사를 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를 가꾸는 사람은 꾸준히 나무에게 사랑을 준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대방이 그에 대해 보상하지 않아도, 묵묵하고 조용히 자신의 사랑을 쏟을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나무를 사랑할 수 있다.
나무를 사랑하는 한 남자를 알고 있다.
그는 세심하고 아기자기한 사람, 이라고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전혀 아니다. 그는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답지 않게 굉장히 성격이 급하다. 다혈질이다. 밥도 엄청 빨리 먹는다. 어떤 일이든지 빨리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금세 소리를 치고 화를 내는 바람에, 어떤 일에든지 느려 터진 나는 그와 참 많이도 싸웠다. 나는 지나치게 조심성이 많아 마트에서 과자 하나를 살 때도 유통기한은 물론이며 한 봉지 당 칼로리는 얼마나 되는지까지 꼼꼼히 따지는 사람이다. 반면 그는 유통기한이 지난 사발면을, 심지어 스티로폼 사발면 용기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고 그 날 새벽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 병원으로 달려가는 사람이다. 그는 나를 보고 답답하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를 보고 거칠하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렇게나 다르고 맞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나, 늘, 사사건건, 부딪히고 싸웠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그와 참 비슷하다. 고집이 센 것이나 욱하는 성미는 그의 것만이 아니다. 내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 말은 듣지도 않고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성향도 그렇다. 상대방이 내 말을 잘 따르지 않으면 언성을 높여 화를 내는 것도 닮았다. 하다 못해, 삶을 계란을 먹을 때도 그와 나는 똑같이 노른자보다는 흰자를 더 좋아한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그저 삶은 계란을 먹을 뿐인 상황에서도, 자기가 흰자를 먹겠다고 싸움이 난다. 우리의 싸움은 결국, 서로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지금 알고 있는 좋은 모든 것들은 그에게 배웠다. 예를 들면, 얼음판에서 신나게 썰매를 타면서 노는 법이나 썰매를 타기 위해 직접 썰매를 만드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법 같은 것. 두꺼운 철사를 구해 철사를 불에 달궈 구부려 썰매 날을 만든다. 목장갑을 끼고 톱집을 하고 못을 박아 썰매판을 만든다. 이런 생고생을 고작 썰매 타기를 위해 한다. 온몸의 에너지와 성의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 몰두하는 법을 그를 통해 배웠다. 낚시터에서 멍하니, 하염없이, 끈기 있게 물고기를 기다리는 법이나 오늘 저녁엔 뭘 먹을까 즐겁게 고민하는 법. 먹고 싶은 카스텔라를 홈메이드로 직접 만들기 위해, 죽어라 팔이 빠질 때까지 계란 흰자를 휘저어 넉넉한 머랭을 만드는 법. 당연히, 꽃을 사랑하는 법과 정원을 가꾸는 법 등등.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는 나만의 특별한 비법은 모두 그의 것이었다.
나무를 보면 늘 그가 생각난다.
깍쟁이에, 이기적이고, 욕심 많고, 오지랖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내가,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애정을 건네고 함께 큰 소리로 웃고 상대방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간미를 한 조각이라도 지닌 건 모두 그 덕분이다. 한겨울에 길거리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생전 처음 만난 노숙자에게 선뜻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는 그의 따뜻함 마음을 넘치도록 충분히 받았기 때문이다. 옆 집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인지, 윗 집에는 누가 사는지, 단박에 사람들과 허물없이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그 넉살 좋은 웃음을 오랜 시간 봐 왔기 때문이다. 꼬임과 뒤틀림 없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들을 줄 알고, 상대가 웃으면 같이 웃고 누군가가 힘들어하거나 눈물을 보이면 내 일도 아닌데 함께 눈물을 글썽일 줄 아는 건, 익숙한 그의 모습 때문이다.
역시 그는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 작은 변화와 눈짓에도 감격하고 기뻐하는 사람. 보답 없는 나무에 정성을 쏟듯, 이득 없는 사람에게 따뜻함을 건네는 사람이다.
아빠, 사랑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