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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Sep 17. 2018

그가 전화를 받지 않는 이유


쇼핑의 천국인 알라모아나 센터 바로 앞에 매직 아일랜드라는 공원이 있다. 이 곳에 가면 '언제든' 바비큐 파티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주말에 가면 훨씬 사람들이 많고, 주중에도 오후 3~4시쯤이면 이미 사람들은 고기를 굽고 있다. 몇 시에 퇴근을 하길래 평일 오후에 공원에 나올 수 있는 건지 매번 신기하다.



바비큐 파티를 위한 장비도 꽤 거창하다. 집집마다 그늘을 만들어 주는 큰 파라솔 정도는 모두 한 개씩 갖고 있나 보다. 당연히 고기를 구울 수 있는 그릴은 필수고 이동식 식탁이나 의자도 필요하다. 반면 돗자리 하나에 그릴만 간편하게 들고 나온 사람도 있다. 2~3명이 단출하게 온 경우도 있고 생일파티를 하는지 일가친척이 다 모였는지 몇십 명이 되는 그룹도 있다. 장비가 많든 적든, 인원이 많든 적든,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즐거워 보인다는 점이다.



숯불에 굽는 고기 냄새. 언제나 환영이다. 자욱한 연기와 함께 진동하는 고기 냄새에 시선이 절로 그들에게 쏠린다. 느긋하게 고기를 먹으며 웃고 떠드는 사람들.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사람도 있고 시원한 맥주 한 캔으로 오후의 피곤함을 달래는 사람도 있다. 제일 신난 건 역시 아이들이다. 잔디밭에서 달리고 구르고 재주를 넘는다. 맨발로 거침없이 잔디밭을 뛰어다닌다. 혼내는 사람도 없고 조용히 하라고 다그치는 사람도 없다. 아이들은 차도 다니지 않는 이 곳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나 주의해야 할 것 없이 온전한 자유를 완벽히 누린다.



산책을 하기 위해 이 곳에 들른 나는 그들의 행복하고 느긋한 시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스트레스 확 풀리겠다.

회사에서 상사와 안 좋은 일이 있었다 해도, 말썽꾸러기 아들 때문에 화가 났더라도, 공부하랴 친구 관계 맺으랴 힘든 학생들도, 혼자 독박 육아를 하느라 밥도 잘 못 챙겨 먹는 아기 엄마도, 넓은 잔디밭에 나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람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십 년 묵은 체증도 단번에 사라지지 않을까.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뭐가 있었지. 일단, 달달한 것 먹기. 초콜릿이나 부드러운 생크림 케이크를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달콤하면서도 향긋한 밀크티와 함께 먹는 베이비 슈는 자잘한 고민들을 한 방에 날려준다. 조금 더 심각한 스트레스는 자는 걸로 해결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쿨쿨 자는 시간에는 모든 걸 잊고 고민해서 해방될 수 있으니까. 고민이 크면 클수록 잠자는 시간도 길어진다. 먹고, 자느라 속이 약간 더부룩하고 바깥바람이 쐬고 싶을 때는 혼자 산책을 나간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산책 장소는 사람들이 많은 쇼핑센터일 때도 있고, 반면 조용하고 한적한 공원일 때도 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모두 혼자 하는 거였네.



한국에서도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많았다면 열 받을 때마다 나도 장비를 한 짐 싸고 나가서 친구들과 푸짐하게 고기를 구워 먹지 않았을까. 마음 맞고, 시간 맞는 친구들과 실컷 떠들며 한가로이 하늘을 보는 일. 상상만으로도 근사하다. 한국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잔디밭을 많이 만들고 잔디밭에 함부로 마구 들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 들어가지 마시오 푯말 대신, 함부로 잔디밭에 마구 들어가 바비큐 파티를 한 후 남은 뜨거운 숯을 버릴 수 있는 쓰레기통을 설치해야 한다.



하와이 특유의 느긋함과 여유로움은 바비큐 파티 덕분이다. 차선 변경 깜빡이를 켜면 기꺼이 양보를 해주는 하와이 사람들의 너그러움은 바비큐 파티에서 나온다. 버스에서 오르내릴 때, 버스 기사와 여유롭게 인사를 주고받으며 오늘 날씨가 좋다는 둥, 오늘은 버스에 사람이 많다는 둥, 지금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가 좋다는 둥 수다를 떨 수 있는 건 그가 어제 바비큐 파티를 했기 때문이다. 


평일 오후,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시라. 그는 오늘 오후, 친구들을 만나러 매직 아일랜드에 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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