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붕어가 작은 어항 안에서도 살 수 있는 이유는 기억력이 안 좋기 때문이란다. 헤엄치다가 어항 벽에 가로막혀 뒤로 돌아서는 순간, 금붕어는 자신이 어항 벽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전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다시 어항 벽을 만나면 뒤로 도는 순간 또 그 사실을 잊는다. 그래서 금붕어는 자그마한 어항 안에서도 살 수 있단다.
작은 아쿠아리움에 와서 작은 수족관 안에 있는 물고기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들처럼 사는 건 어떨까 상상해 본다. 갇혀 사는 일. 그러나 안정적이고 위협도 없고 먹이도 꼬박꼬박 제공된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금붕어처럼 내가 갇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면. 그래서 불편함이 전혀 없다면. 이런 삶도 괜찮지 않을까.
망망대해 속 자유에는 언제나 거친 물살이 출렁인다. 춥고 배고프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큰 물고기들의 위협. 그들은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나를 덮친다. 무한한 자유가 다 무슨 소용일까.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내기엔 난 너무 약하고 소심한데. 만일 금붕어처럼 작은 아쿠아리움 속에 갇혀 있는 게 불편하지 않다면, 안전한 아쿠아리움 속 삶도 괜찮지 않을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위험한 발상이다. 누군가가 나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입맛에 맞게 나를 길들였다면.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일이, 생각을 하지 않는 일이, 고민을 하지도 않고 이미 정해진 정답 외에 다른 의견을 내지 않는 일이 전혀 불편하지 않도록, 누군가가 나를 안전하고 편안한 바보로 만들었다면. 그 사람이 세상을 지배하고 다른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다시 바다로 나가야 하나. 기꺼이 파도에 몸을 부딪혀야 비로소 나답게 살 수 있다. 나답게 살려면 누군가의 지배없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포식자에게 잡아 먹혀 죽는 것보다, 누군가로부터 농락당하고 조종당하는 게 더 못 참을 일이다, 인간에게는. 자유, 자존심, 자존감, 명예, 신념, 자기만족, 자심감, 행복 등의 감정은 인간에게 매우 소중한 요소다. 때론, 무엇보다 소중한 자신의 목숨을 버릴 만큼.
인간은, 감정이 상했다는 이유로 자살을 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동물의 왕이라고 해도, 사자는 자신의 신념이 꺾였다고, 혹은 자존심이 상했다고 자살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명예가 더럽혀져 수치감을 느끼거나, 억울한 누명으로 자신의 결백이 밝혀지지 않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이렇게나 중요하다, 인간의 감정은.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얼마나 존중하면서 살고 있는지. 타인의 자존심이나 마음을 얼마나 배려하고 살피는지 되짚어 본다. 함부로 말하고 비웃고 무시하며 짓밟는 일들이 너무 쉽다. 학교든, 회사든, 친구들 사이든, 아니 가장 친밀한 가족 간에서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를 왕따 시키고 한 사람에 대해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쉽게 험담을 하며 친목을 다지기도 한다. 한 사람의 기분 따위는 조금도 중요한 일이 아니다. 너 하나가 불편하든 말든 학교의 규칙은 규칙이고 네가 오늘 아프든 말든 회사에 출근해 할당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죽이며 운다.
누군가가 밤새 고민하며 준비했을 수줍은 고백. 자그마한 아이의 떼쓰는 울음소리. 늙으신 부모님의 습관 같은 한숨. 유난히 시무룩한 친구의 작은 어깨. 그리고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러운 내 마음까지. 우리가 하찮게 여겼던 것들, 더 큰 목표나 미래를 위해 무시하고 외면했던 것들이 눈에 밟힌다. 그동안 해 왔던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갑자기 거칠게 느껴진다. 너무 윽박지르지는 않았나, 별걸 다 갖고 그런다 무심코 넘기지는 않았나. 좀 더 세심하게, 조금 더 따뜻하게. 살뜰하고 곡진한 마음이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