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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Apr 10. 2019

자유의 딜레마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는 '자유'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손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다. 무형의 힘찬 파도다. 그에게 정해져 있는 것, 딱딱하게 고정돼 있는 것은 없었다. 잡을 수 없는 공기요, 물이다. 그의 시선은 유연했다. 작은 눈은 호기심으로 언제나 반짝였고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게 솔직했다. 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이 한 세상, 원 없이 열정적으로 살았다. 그러다, 죽었다. 


나도 분명 '자유'를 꿈꾼다. 그러나, 조르바와 같은 자유는 아니다. 아무데서나 자고 시커먼 얼굴은 거칠게 일어나고 이빨은 빠지고 아파도 병원 한 번 못 가는, 찬 이슬을 맞으며 떠도는 시린 자유. 이런 자유는 내가 꿈꾸는 자유가 아니다. 말이 좋아 별 보며 숲 속에서 다람쥐들과 함께 잠드는 거지, 실제 해 봐라.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내가 꿈꾸는 자유는. 누구에게도 굽실거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멸시받지 않으며, 상한 감정을 숨기며 비굴하게 웃지 않아도 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고통 없이 당당하고 자신감 있을 수 있는. 사치는 아니나 부족함 또한 없는. 그리고 어느 것으로부터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 적고 보니, 집에서 큰 유산을 물려받지 않는 한, 전문직이어야 하는데. 전문직? 의사나 변호사 뭐 이런 거? 이런 직업을 가진다 한들 얼마나 당당할 수 있을까. 잠자는 시간 외에는 오로지 일에만 매진해야 하고 자신의 명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가면들을 쓰고 살아야 하는지. 그럼 사진작가나 화가? 이런 직업은 인맥으로 성패가 나뉘기 때문에 인맥 관리에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기도 힘들고. 그럼 다시 자유와 멀어진다. 원점이다.  


마냥 자유를 꿈꾸자니 불안하고 힘겨운 생활이 두렵고, 안정적인 자유를 꿈꾸자니 다시 답답한 현실로 뛰어들어야 한다. 결국 내가 꿈꾼 건 허영이나 공상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그러나 자유를 누리려면 모두 조르바처럼 불안정해야 하는 걸까. 


조르바의 자유 vs 보장된 삶. 
어느 쪽을 선택해야
 이번 세상,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이제 나는 조르바의 삶이 부럽지 않은,
가면 쓴 사회에 어느 정도 적응한 나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작은 안정을 쉽게 놓을 수 없는, 아니 이 안정을 잃을까 불안해하는, 그리고 이 사회의 틀 안에서 더 많은 것을 누리고자 하는 그런 나이. 


조르바를 꿈꾸는 자가 몇이나 될까. 조르바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당당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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