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조차 안 재우기로 유명하던 신입사원 연수를 받을 때 일이다. 자정을 넘기는 빡빡한 일정 탓에 모두 수면부족상태였다. 하지만 팀원 한명이 매일 밤 팔 굽혀 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한다는 게 아닌가. 수면시간이 5시간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운동을 빼놓지 않던 그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걸까?
이젠 나이가 든 것일까, 아니면 사실 알고 보니 다들 운동을 좋아하고 있었던 걸까. 요즘은무슨 운동 하냐고 물어야할 만큼 오히려 운동을 안 하는 사람이이상한 느낌이다.
스톡홀름은 섬으로 이루어진 도시. 도시이지만 물가를 따라 조깅할 수 있다는 게 참 행운이다.
스웨덴에 처음 갔을 때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조깅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처음 살던 쿵스 홀멘 집 근처에는 풀과 물이 어우러진 소박하지만 예쁜 오솔길이 있었다. 그 길을 유모차를 밀고 다니다 보면,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나이키 광고처럼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그들은 건강함이 마구 뿜어져나오는 사람들이었다.
어린 아이들을 자전거 트레일러에 넣어서 싸이클을 하는 모습도 흔하가 출처: http://polyscorp.se/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도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자전거 길에는 아이를 태우고 또는 혼자서 출퇴근을 하는 사이클족이 흔했다. 겨울철이면 도시 곳곳에 얼려놓은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도 익숙했다. 롭스텐 근처에 있는 큰 공터에서는 버스를 타고 긴 스키를 매고 온 사람들이 컨츄리 스키를 타기도 했다. 여름에 볕이 좋으면 근처 물으로 가서 수영을 하곤 했다.
겨울이 되면 스케이트장으로 바뀌는 바사파켄의 풀밭@Vasaparken
자연과 더 가까워서일까. 아님 길고 긴 겨울을 잘 보내기 위해서일까. 스웨덴에서 운동은 우리나라보다 더 생활에 밀접하게 자리한 느낌이었다.
열심히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아이를 갖게 되면 어떨까?
북유럽에서 가장 큰 헬스 체인, 'SATS'에는 임산부뿐 아니라 갓난아이와 함께 오는 엄마들 흔하게 볼 수 있다.그곳에서는볼록 나온 배로 역기를 드는 임산부를 만날 수 있다. 만삭까지 운동을 하던 엄마들 이어서일까. 출산 후에 복귀도 빠르다. 12개월 미만의 아이 엄마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갔을 때 일이다. 한 엄마가 목도 못 가누는 생후 20일 정도의 아이를 바구니 유모차에 태우고 왔다. 바구니째로 들고 와 아이를 옆에 놓고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몸이 탄탄하고 날씬하던지. 아이 엄마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중간쯤 모유수유를 하더라.
이처럼 스웨덴에서는 임신, 출산 후에 안정을 권유하지 않는다고 한다. 평소처럼 운동을 하되 무리하지 않는 정도로 하면 된다는 분위기여서인지, SATS에는 아이를 돌봐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용 방법도 쉽다. 멤버십에 100kr(약 13천 원)짜리 mini SATS를 추가하면 된다. gym안에 별도로 마련된 아이 놀이공간에서 아이를 최대 1시간 30분까지 봐준다. 접수대에서 순서를 기다리면서 보면 아이를 맡기러 오는 게 꼭 엄마만은 아니다. 남성의 육아휴직이 보편화되면서 아이들을 mini SATS에 맡기는 사람의 상당수는 아빠다. 근육이 탄탄한 아빠가 애 셋을 내려놓고 운동을 하러 가는 모습이 스웨덴에서는 낯설지가 않다.
MiniSats 접수대
처음 스웨덴에 와서 아이를 맡기고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때, 사실 너무 혹했다. 친정 찬스를 쓸 수 없는 외국의 육아. 너무도 나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쌀 거 같아서' 그리고 '아이가 울것같아서' SATS의 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다시 스웨덴을 찾았을 때는 조금 달랐다.
새로 사귄 오픈 유치원에서 만난 'Yang'이 mini SATS를 이용하고 있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녀는 백일 정도부터 mini SATS를 이용했는데 아이도 잘 봐준단다. 비용도 싸진 않지만 매일 가서 아이를 맡긴다고 생각한다면 지불할 만하다는 그녀의 말에 큰 마음을 먹고 미니사츠를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첫째에 비해 사교성이 좋은 둘째에 대한 믿음도 있었긴 했다.
미끄럼틀과 장난감, 게임기부터 바운서까지 있어서아주 간난아이부터 이용할 수 있다.@Odenplan지점의 mini SATS
한국으로 돌아오기 마지막 2달은 거의 매일 운동을 했다. 나만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던 타국에 나는 비록 운동을 하는 시간이지만 아이와 떨어져 온전히 나라는 사람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소중했다.
매일 아침에 첫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슬슬 주위를 산책하다가 SATS에 가서 둘째를 맡기고 운동을 했다. 운동이 끝나면 둘째에 이유식을 주고 유모차에 태워 주위를 걸으면 낮잠에 들곤 했다. 본의 아니게 건강해진 삶 덕분에, 귀국 후 받은 건강검진의 체지방 수치가 보통을 기록할 수 있었다. 이십대 후반부터 근육량 감소로 늘 마른 비만이 나왔던 나였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에서 산후 100일까지는 무조건 안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도 엄마도 거의 밖에서 볼 수가 없다. 나도 첫애를 낳고 50일 동안 거의 집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몸에 바람 든 다는 이유였다. 같은 이유로 한여름에도 양말 신길 강요받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실제로 무거운 물건을 들면 늘어나 있던 근육에 무리가 손목이 저릿저릿 아프기도 했다. 그래서 출산 후 한참은 최대한 무리가 가지 않게 안정을 취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도 운동하기는 쉽지 않다. 둘째를 낳고 겨우 산후 여성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중 아이를 데려와도 되는 프로그램을 찾았다. 아이를 맡기기가 쉽지 않은 엄마들에게도 운동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시작된 '맘스핏'이었다. 여기저기서 아이가 울고 기어 다니고 말을 거는 통에 난장판이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외의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산후 여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도 아이 동반을 금지했던 탓에, 복잡해도 운동할 수 있음에 감사했던 기억이 난다.
운동을 하는 게 부담이 되는 건 비단 아이가 어릴 때만은 아니다. 초등학생이 된다고 해도 아이를 혼자 놔둘 수는 없기 때문에 남편이 조기축구라도 할라치면 아내는 꼼짝없이 독박 육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운동이 필요하고 중요한 일임에도 아이 있는 집에서 '운동 좀 하고 올게'라는 말이 이기적으로 들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