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다니기 전에는 어떤 회사라도 나를 받아줬으면 싶지만,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 대부분은 회사를 그만두고 놀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을까 싶다. 조기 은퇴니 파이어족이니 디지털 노마드니.. 회사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며 평화로운 삶을 사는 건 많은 이들의 꿈이 아닐까 싶다.
회사를 안 간지 이제 6개월째. 수습기간 동안 불꽃처럼 온몸을 불살라서 업무에 적응하고는 지쳐 나가떨어진 후,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자며 리스트를 작성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이런 거나 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들 말이다.
일단 그림 요소들과 이모티콘을 그려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도전해 봤다.
먼저, 그림요소. 봄이었던 만큼 꽃이랑 부활절 요소등을 그려서 올려다. 그리는 과정은 매우 즐거웠고 실제로 누군가가 내 그림을 사용한다는 것도 꽤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수익면으로는 아주 소소했다.
이 쪽도 계속 파면 가능한 수익요소들이 꽤 있었지만 일단은 이모티콘으로 넘어갔다. 이모티콘 한번 그려봐야지라는 생각은 한참 오래전에 생각했던 거라 당시 책도 빌려보고 그랬었다. 아이패드 사고 나서니까 한 4-5년 전쯤인 듯싶다. 근데 그땐 독박육아에 회사에 바빠서 선뜻 도전은 못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남는 게 시간 아닌가. 캐릭터를 만들고 콘셉트를 잡고 그 콘셉트에 맞는 24개의 그림을 그리는 게 쉽진 않았지만, 꽤 즐겁게 작업을 했다. 캐릭터는 내가 좋아하는 펭귄을 모티브로 만들어서 회사원 대상으로 한 이모티콘들을 만들어봤다.
결과는 "미승인", 조금 수정해서 다시 올려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미 나온 다른 회사원용 이모티콘들이랑 차별화가 잘 안 되어서일까? 아님 사용자들이 살만한 눈길 끄는 포인트가 없어서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카카오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궁금증을 남긴 채 일단 마무리지었다. 이모티콘도 한 세트를 만들면 사용자수가 많은 카카오톡을 시작으로 도전하되 안 되면, 카카오톡-> 라인-> 밴드 순으로 형식만 고쳐서 내보라고 하더라. 하지만 운전면허와 애들 방학 등등으로 이모티콘도 일단 잠시 멈춘 상태.
그리고 소설 쓰기. 어릴 적부터 이야기와 책 읽기를 좋아했던 터라 초등학교 6학년 때 써낸 장래희망이 소설가이기도 했었다. 물론 그 이후에 장래희망은 계속 바뀌었지만 그래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있어서 중학교 때는 다이어리에 끄적거리기도 하고 한 십 년 전쯤에는 한겨레에서 하는 소설 쓰기 입문 과정을 다니기도 했었다. 하지만 소설 쓰기라는 꿈은 왠지 말하기 부끄러운 단어라서.. 입에 올리긴 쉽진 않긴 했다. 왠지 모르게 한국에서 소설은 일반 사람들하고 다른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적에 소설가가 되려면 각종 신문사나 잡지에서 하는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입문하는 게 일반적이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인터넷 플랫폼들도 잘 되어있고 독립출판도 흔해져서 문턱 자체는 낮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에게 소설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나까짓게 소설을 쓰고 싶어 한다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좀 있나 보다.
하지만 뭐 시도해 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은가. 일단 예전에 한국에서 사 온 글쓰기 책을 꺼냈다. 어떻게 하면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어 재밌게 만들 수 있을지를 알려주는 책이었다.1단원부터 읽으며 따라서 내가 쓰고 싶은 등장인물을 설정하기 시작했다. 먼저 외모부터 시작해서 성격, 학력, 직업, 인간관계, 가치관 등등을 정해나갔다. 예전에 한 소설가가 쓴 책에서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소리를 내기 때문에 소설가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매력적인 등장인물을 설정하는 건 의외로 시간이 많이 들었다. 주인공을 정하는 건 그나마 괜찮은데 준주연급들의 등장인물들은 조금 까다로웠다. 하나하나 정해 가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이긴 한데, 계속 등장인물만 파고 있으니 속도가 더뎠다. 3장까진가 읽으며 쓴 뒤 이모티콘과 마찬가지 이슈로 잠시 멈춘 상태이다. 아직 이야기쓰기는 시작도 못 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다른 꿈 중 하나는 그림책이다. 그림책은 십여 년 전 대학원이랑 회사 때문에 대전에 있을 때 한참 해보고 싶었다. 그때 상상마당에 큰 동화책 작가 입문 과정도 있고,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하는 큰 도서전(?)에 책을 출품하는 전문가 과정도 있었다. 하지만 위치적 한계로 수업을 들을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그림책 쓰기는 한국에서 사 온 또 다른 책을 보면서 시작했는데, 이건 크게 도움이 안 되었다. 이 책은 그림책을 만드는 것보다는 그림책에 들어가는 글을 쓰는데 초점을 맞췄는데, 사실 몇 년 전에 이미 생각해서 써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에 맞는 그림을 그리려니 막히기 시작했다. 보고 따라 그리기는 어느 정도 자신 있는 편이었는데, 나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상상해서 그려니 쉽지가 않았다. 그림 스타일이나 캐릭터 모습, 움직임 등등을 어떻게 잡아서 표현할지 막막했다. 그냥 막 그리니 10살짜리가 그린 거 같은 결과물이 나와서 생각이 많아졌다. 이모티콘 그릴 때는 나의 센스나 유머감감각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림책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려니 어떤 상황을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센스나 유머감각은 좀 타고나는 면이 있다면, 후자는 연습해서 높여가야 하는 면이 있는 듯하다. 동세(?) 같은 그림 연습이 필요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결국, 그림책 그리기는 능력 부족으로 멈춰졌다.
하고 싶은 일 중에는 악기 연주도 있었다. 어릴 적부터 취미로 플루트를 연주했는데 아이를 낳고는 거의 할 수가 없었다. 정기 연주 모임이나, 연주회 같은 목표가 없어서 그런지, 악기 연습은 생각보다 하게 되지 않았다. 6개월 동안 두 손가락에 꼽을 정도. 그렇게 간절하진 않았나 보다.
그 외에는 하고 싶다기보다는 원하는 걸 하기 위해 필요한 운전과 언어.이 건 다음 글에서 이어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