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람 사는 마을

아이슬란드 최북단의 도시, 이사피요르두르

by 노을



우리가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머물렀던 이사피요르두르Ísafjörður는 링로드Ring Road라 불리는 아이슬란드의 주도로인 해안 순환 도로에서 벗어나, 마치 손을 흔드는 것처럼 북서쪽으로 툭 튀어나온 베스트피르디르Vestfirðir에 위치한 도시이다. 지난해 6월 베스트피르디르를 여행할 때 멋모르고 차로 산을 넘어오다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를 만났던 우리는 올 1월 내륙 도로 운전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국내선 비행기를 탔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산사태로 도로가 봉쇄되거나 바람 때문에 항공 운행 일정이 시시각각 바뀌는 일이 예사이다. 이사피요르두르 역시 베스트피르디르의 중심 도시라고는 해도 물자의 수송이나 사람의 이동이 만만찮은 만큼,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장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사피요르두르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틈나는 대로 동네를 돌아다녔는데, 로컬 아티스트인 스마우리 크리스틴손이 그림을 그리고 그의 아내 니나 이바노바가 에디팅 한 아름다운 지도의 길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스마우리는 중심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마을 북서쪽 에르니르Ernir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정경을 세심하게 드로잉 했다. 병원, 캠핑 사이트, 상점 등 여행자를 위한 정보가 표기된 컬러 인쇄본은 도시 어디서나 무료로 받을 수 있고 마을 사람들은 길을 알려줄 때면 으레 이 지도에 위치를 표시해 쥐여준다. 건물이 새로 지어지거나 색깔이 바뀌는 것을 반영하여 지도를 업데이트하기 때문에, 지도는 마을의 생활사를 기록해 가는 아티스트의 그림일기이기도 하다.



이사피요르두르 지도 제작을 위한 드로잉 © Smári Kristinsson



사람 사는 곳에 식료품점, 철물점, 은행, 병원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토록 작은 도시에 12만 권의 장서와 무료 커피가 있는 널찍한 공립 도서관, 춥고 어둡고 긴 겨울 온 가족의 놀이터가 되어 주는 수영장, 1평짜리 갤러리, 마을마다 꼭 하나씩 있는 뜨개질 가게, 비영리 세컨핸드 샵 역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장소들로서 활기차게 운영되는 것이 참 보기 좋았다.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해 주는 장소들이기 때문이다.


이사피요르두르에서 오래된 건물은 원형과 역사를 간직한 채 새로운 목적을 가진 이들을 맞이하고, 물건은 수명을 다할 때까지 여러 주인을 거치며 소중하게 사용된다. 새로 만들거나 사는 대신 새로운 용도를 찾는데, 예를 들면 일회용 컵을 쓰지 않는 카페에서는 테이크아웃 손님을 위해 소스를 담았던 유리병을 모아두었다가 커피를 담아 준다. 공립 도서관이 있는 이사피요르두르 컬쳐하우스Safnahúsið Ísafirði아이슬란드 최초로 전문 건축 교육을 받은 건축가 구드욘 사무엘손(1887-1950)이 설계하여 1925년 완공된 병원 건물로, 리모델링을 거쳐 2003년부터 도서관, 갤러리, 아트 컬렉션과 지역의 역사 아카이브 등이 포함된 마을의 복합 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무의식 중에라도 풍요와 소비를, 결핍과 절약을 연결해 왔다면 아이슬란드의 1인당 국내 총생산GDP per capita이 약 7만 4천 달러로 세계 6위(2018년 국제통화기금IMF 발표 기준)라는 사실에 놀라고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생활방식은 물론 깨끗한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보다도 겉치레 없는 삶, 행복의 알맹이로 보였다.



IMG_2829.JPG Safnahúsið Ísafirði © 배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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