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시리즈 악덕과 미덕
나는 돈을 좋아한다. 나를 삼류라 말해도 괜찮다. 예나 지금이나 돈은 드러내고 말하기 껄끄러운 대화거리다. 돈을 좋아하면서 좋아한다는 표현을 하면 상대가 상스럽게 볼까 조심스럽다. 그 돈이 없으면 상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내가 돈을 좋아한다고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거라고 믿는 철없는 나이는 아니다. 온몸을 던질 만큼 뜨겁게 사랑할 대상도 복수할 만큼 미운 상대도 아니라는 말이다. 돈의 불편한 진실 앞에서 솔직하게 얘기할 나이가 됐을 뿐이다. 체면보다 현실 앞에 당당히 마주할 용기가 생긴 것이다.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에 “부자가 부자의 악덕에서 헤어나기 어렵듯이 가난뱅이에게도 가난뱅이의 악덕은 있다. 또 부자가 미덕이 있듯이 가난뱅이의 미덕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돈은 나를 악덕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고 미덕으로 감쌀 수도 있다. 돈은 삶과 죽음처럼 명확한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 돈 앞에서 나약해질 수 있는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돈의 두 얼굴의 태도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돈을 좋아하냐 싫어하냐 묻고 좋아하면 속물로 싫어한다면 깨끗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던가.
금을 돌같이 보라는 말에 나는 공감하지 않는다. 금을 금 같이 보고 내가 가질 만한 것인지 가지면 안 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돈은 앞뒤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느니 조심하라는 말일 것이다. 돌로 보라는 것은 처음부터 탈이 날 돈에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열심히 살면서 버는 금이 내가 가질 수 있는 귀중한 금이 되는 것이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자의 금은 돌이 될 거라는 가르침이다.
돈이 많아도 ‘돈 돈’ 거리며 사는 사람이 있고 없어도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돈을 좋아한다고 부자로 살 수는 없지만 악덕과 미덕은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은가.
악덕과 미덕은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