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시리즈 혹시 하품 나거나 지겹지 않나요
방송에서 붐비는 모습만 봐도 고개가 절로 좌우로 흔들린다. 아니야 저건. 오래전 유명한 가을 축제에 갔다 다시는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뒤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밀려 앞으로 걸을 수밖에 없던 기억 때문이다.
가지 않아도 관광지 모습은 tv에서 볼 수 있다. 올 가을에도 유명한 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몸이 닿을 듯 걸어간다. 성급한 지인은 단풍이 덜 든 설악산을 다녀왔다고 했다.
사람들은 봄이면 꽃피고 가을이면 단풍지는 곳으로 왜 갈까. 한라산이며 설악산 지리산등 유명한 산에 1년에 몇 번씩 오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곳이 지루한 곳이라면 그러겠는가. 해마다 내장산 단풍과 선운사 꽃무릇을 보러 가고 한겨울 눈꽃을 보기 위해 추위를 무릅쓰고 산으로 가지 않던가.
주말이면 가는 시골집에도 이른 봄 우유 빛 매화꽃을 시작으로 돌 틈에서 피어나는 분홍색 꽃잔디를 매년 보아도 얼마나 사랑스런지 모르겠다. 매화꽃이 질 때쯤 봄바람이 불면 얼른 나무 아래 서서 꽃비를 맞고 있을 때 행복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10번을 했으니 10년이 지났어도 매년 새롭다. 올해도 내년에도 진하지만 촌스럽지 않은 분홍색 영산홍 박태기 꽃이 피고 유명 향수냄새보다 더 좋은 라일락의 진한 향기는 매년 맡아도 지겹지 않다. 약을 하지 않는 사과나무에 열린 사과는 거의 벌레들의 집이고 모과나무는 못생긴 열매를 뚝뚝 떨어뜨리고 향기 없는 밤도 툭툭 떨어진다. 단풍나무가 제법 예쁜 색을 내고 있다. 늘 그 자리에서 계절의 시간에 맞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 자리에 있다고 변하지 않을까. 아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매년 꽃을 피우고 잎을 내고 떨구지만 다르다. 꽃은 스스로 꽃씨를 떨구어 조금씩 자리를 늘려 내년에는 더 많은 꽃을 보여준다. 나무는 겨울을 지나 봄에는 훌쩍 큰 모습으로 더 많은 꽃송이를 달고 있다. 그 자리에서 더 좋은 모습으로 변한다. 그러니 매년 보는 일이지만 자연의 질서가 지겹다거나 지루하지 않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고 하지만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나무처럼 곧은 심지마저 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늘 마음이 한결같다는 말은 고집불통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이 더 나아지는 모습일 것이다. 매년 더 많이 핀 꽃들과 제법 자란 나무처럼 말이다.
가을이 지나 겨울로 들어섰다. 극성스러운 더위를 가려주던 주던 크고 작은 나뭇잎들은 떨어져 한 겨울 이불 같이 따뜻하게 땅을 덮는다. 봄에 올라 올 새싹들은 손장갑에 숨은 어린아이 손처럼 고물거리겠지. 봄이면 산도 시골집 마당도 더 풍성하겠지.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더 자라는 모습에 어떻게 지루함이라던가 지겨움을 있겠는가.
어느 날 늘 다니던 길의 나무가 언제 이렇게 컸나 놀란 날도 있다. 늘 그 자리에서 늘 한결같은 모습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자연처럼 살아가고 싶다. 내가 아무리 짜장면을 좋아해도 자주 먹으면 질리지 않겠나. 자주 보아도 물리지 않고 몇십 년을 만나도 하품 나게 하고 지루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든든한 뿌리내리는 나무처럼 번지는 예쁜 꽃잔디처럼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