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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y 02. 2018

독일에서 바라보는 근로자의 날

그리고 근로자의 날의 비하인드 스토리



5월 1일. 

오늘은 근로자의 날이다. (독일은 한국보다 7시간이 느려서 아직은 근로자의 날...이다!)


한국에서는 근로자의 날이란 일부 사람들만 쉬는 날이었다. 

독일에 있는 지금 5월 1일을 앞두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아, 내일 마트 문 닫겠네. 미리 장 봐둘 게 있나?'였다.

독일은 원래 일요일도 웬만한 가게가 모두 문을 닫아서 슈퍼도 문을 닫는데, 근로자의 날도 그 정도로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다. 그냥 웬만한 '근로자'들은 거의 다 쉰다고 보면 된다. 물론 아주 일부 문을 여는 카페도 있는데 이 경우는 원래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소수의 카페(스타벅스 같은) 거나 아니면 업무 특성상 일을 하시는 분들(버스기사 등등)도 있긴 하다. 하지만 어쨌든 전반적으로는 다들 푹 쉬는 날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쉬지도 못하고, 심지어 수당도 못 받는다는 좀 황당한 경우까지 왕왕 벌어지고 있는 게 슬펐다. 그래서 독일의 근로자의 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구글링을 하다 알게 된 사실들을 조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근로자의 날은 한국 정부가 스스로 만든 날이 아니다.



나는 솔직히 그동안 근로자의 날의 유래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저 으레 있는 기념일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에는 훨씬 더 의미 있고 역사적인 스토리가 숨어있었다.



근로자의 날의 첫 시발점이 된 것은 미국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최초로 1일 8시간 근무를 주장하는 시위는 그로부터 30년 전인 1856년 호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호주에서의 이 시위를 기반으로 미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것인데, 부당한 근로 환경을 참다못한 근로자들이 일 8시간 노동법을 위해 단체 시위를 벌인 것이었다. 특히 근로자의 날의 계기가 된 시카고의 '헤이마켓 사건(Haymarket Affair)'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때는 1886년 시카고, 당시 하루에 3달러를 받으면서 12시간 동안 일을 해야 했던 열악한 근로 환경에 참다못한 근로자들이 대규모 파업을 선언했다. 농기계 공장부터 시작해서 주요 사업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군에서 파업을 선언하여 그 규모가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한 고용주들의 반응도 만만치 않았다. 고용주들은 공장 및 사무실을 폐쇄하여 파업에 나선 근로자들의 출근을 금지하고 (물론 파업일 동안은 급여도 주지 않음) 800명~1,000명가량 되던 그들의 빈자리를 새로운 이민자들을 고용하여 대체하려고 했다.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대처였다. 하지만 근로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당시 시카고의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독일어로 발행되던 '아르바이터 자이퉁(Arbeiter-Zeitung)'이라는 근로자들의 신문이 있었는데, 이 신문에서 캠페인을 벌여 이민자들을 고용해서 인력을 대체하려던 고용주들의 움직임을 막았다. 고용주들은 결국 300명밖에 채용하지 못해 결과적으로는 근로자들의 대승리였다.




아르바이터 자이퉁 신문의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3주가 지나고, '아르바이터 자이퉁 신문'의 최고 편집장이 5월 1일 저녁 헤이마켓 광장에서 집회를 가지고 연설을 진행한다. (당시 5월 1일은 원래 '이사의 날(Moving day)'이었는데, 그 날에 이사를 하던 집이나 회사가 많아서 변화가 가장 많이 일어나던 날이었기에 이 날을 선택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파업과 시위가 계속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경찰과 시위자들 사이에서의 폭력적인 대치 상황이 발생했고 5월 3일 근로자 2명이 경찰에 의해 사망하기에 이른다. 이에 항의하기 위해 다음 날 집회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전날 사망자가 발생한 만큼 이 집회는 평화롭게 진행되었는데, 경찰이 해산할 것을 명령하자 누군가가 갑자기 폭탄을 던졌다. 이 갑작스러운 폭탄으로 경찰이 1명 현장에서 즉사하고, 6명의 경찰은 치료를 받다가 끝내 사망, 200명 가까이 되는 시위자들도 중상을 입게 된다. 


경찰은 이 집회를 주도한 무정부주의자 8명을 경찰관 살해를 교사했다는 혐의로 체포하였고, 5명은 사형을, 3명은 금고형을 선고받게 된다.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들 중 한 명은 사형 전날 스스로 목숨을 끊고, 4명은 사형되었으며, 금고형을 받은 3명은 6년 여가 흐른 뒤에 주지사 게르드에 의해 재판이 부당하였다는 이유로 특사를 받았다. 


이 '헤이마켓 사건'의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해서 사람들은 1890년부터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정하고 매해 5월 1일에 근로자들이 모여 시위를 하는 전통이 세계 곳곳에서 이어져내려오고 있다. 







독일의 근로자의 날




독일에서는 1933년부터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법정 공휴일 (Public holiday)로 지정해 이어져오고 있다.

독일에는 DGB(Deutscher Gewerkschaftbund)라는 대표적인 독일 노동조합이 있어 이들의 주도 아래 수도 베를린을 포함한 함부르크, 뤼벡, 뉘른베르크 등 여러 도시에서 그 전통성을 이어가며 근로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행진을 진행한다. 







왼쪽에 손가락을 들고 있는 분이 독일노동조합 의장. 오른쪽 사진에서 그를 찾아보시길ㅎㅎ (이미치 출처: DGB)







DGB에서는 '연대, 다양성, 정의'라는 모토 아래 시위를 진행하고 있고, 이미 오전 10시경부터 시작해서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대체적으로 평화적인 시위를 하고 있지만,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선 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경찰들도 이에 대비하고 있고 평화적인 시위를 기대한다는 발표 등을 하는 모양이다. (결국 경찰은 이 날 못 쉬는 걸로...) 







이미지 출처: DGB





시위 형식도 꽤 다채로와서 위 사진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단체 행진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래 사진처럼 독특한 시위를 하기도 한다. 

아래 사진 팻말의 의미는 '아파서 일 못하기 직전'이라는 의미 정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마냥 좋다고 생각했던 근무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 그들이 원하는 건 뭘까? 갑자기 궁금해져서 독일 노동조합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풀타임 근로자의 업무 환경 개선, 파트 타이머나 임시 고용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 근로자들의 건강은 실험 대상이 아니다' 등의 주제로 독일 노동조합장과 그 의원들의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아직 독일 근로 환경에 대해 글을 쓰기에 내 역량이 부족하여 자세한 내용은 다룰 수 없지만, 일하기 좋다는 나라 독일에서도 아직도 처우 개선을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보며 앞으로 우리나라는 갈 길이 더 먼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며 살짝 먼 산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풀어야 할 과제가 되지 않을까 하여 한 독일 친구에게 이야길 꺼냈다. 




나: 독일이 한국보다 일하기 좋은 나라인데 아직도 독일 사람들이 개선하려고 하는 게 있다니까 뭔지 궁금해.
친구: 맞아. 아직도 바뀌어야 될 게 많아. 
나: 그렇구나. 아마 나중에는 한국에도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
친구: 병원 진료 한번 받으려면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 그리고 세금도 엄청 많이 내고 있고. 
나: 아.. 그건 좀 다른 이슈네. 우린 병원 진료도 빨리 받을 수 있고, 세금도 적게 내는 편이라.
친구: 딱 하나 좋은 건 심각한 병에 걸려도 미국처럼 파산하진 않아. 
나: 그렇지 그건 중요하지.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니 역시 세금과 병원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좋은 점에도 다시금 감사하게 된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일하기 좋은 독일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어느 곳에나 개선돼야 할 부분들은 있기 마련인가 보다. 



언젠가 전 세계 모든 근로자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 때, 이 날은 시위가 없고 축제만 벌어지는 날로 바뀔 수 있을까. 






2015년 5월 1일의 베를린






하지만 이런 진지한 이야기만 했다고 해서 독일에서 근로자의 날이 심각하기만 한건 절대 아니다. 노는 날인데 신나는 사람들이 많은 건 당연지사! 내가 처음 독일에서 근로자의 날을 겪은 건 3년 전인가 출장으로 베를린에 갔을 때였다. 그때 5월 1일이 쉬는 날인지도 모르고 팀 출장을 갔는데 기대도 안 했던 휴일이 생겨서 하루지만 나름 여유롭게 베를린 관광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시위나 퍼레이드는 보지 못했고, 근로자의 날 행사로 먹고 마시고 음악을 즐기며 여유 넘치는 현지인들 틈에 끼여서 소시지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2015년 5월 1일 베를린 풍경을 담은 영상





오늘은 밖에 나가지 않고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보내나 인스타 염탐도 살짝 해보았다.

3년 전 보았던 베를린 개선문이 생각나는 사진도 있었고 (베를린은 3년 전도 오늘도 날씨가 좋다... 부럽다)

영국에서는 길을 행진하는 시위대 옆에서 멋지게 차려입고 셀피를 찍는 흑인 할아버지가 인상 깊어서 사진을 데려왔다. 






오늘 '근로자의 날' 태그로 올라온 인스타 사진들 왼쪽은 영국, 오른쪽은 독일 (출처: 이미지 내 표시)






이미 세계 많은 나라에서 근로자의 날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는데 무슨 이유로 우리나라는 아직도 사람들이 이 날 쉬는지 안 쉬는지 애간장을 타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분명 무슨 사정이 있겠지만, 근로자의 날이 생기게 된 그 배경이, 약 130년 전 사람들이 들고일어나야만 했던 하루 12시간의 근무 환경이, 우리에게는 아직도 현실이기에, 근로자의 날이 공휴일이 되는 것을 넘어서서 하루빨리 대한민국의 근로자들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래본다.









- 글쓴이 소개

필명 노이(Noey). 30대인 게 행복한 평범한 사람.

운 좋게 모 대기업 공채 해외사업부에 입사하여 인생이 꽃길일 줄 알았으나 흙길만 밟다가 나옴. 잠시 디지털 노마드를 꿈꿨으나 천성이 집순이라서 보류 중. 더 늦기 전에 독일워홀비자를 써보려고 작년에 독일에 왔다가 함부르크와 사랑에 빠져 아직 독일 거주 중. 호기심이 폭발할 때, 감성이 충만할 때 글을 쓰며 생계를 위해 소소한 번역일을 하다 최근 '그 여름의 함부르크'라는 유럽구매대행 블로그마켓을 오픈하여 오랜만에 열일중. 

올해 목표는 생활비를 버는 것과, 독일어 초보 탈출해서 4개국어하는 사람이 되는 것.









(관련 내용 출처)


- 위키피디아: https://de.wikipedia.org/wiki/Erster_Mai

- DGB: http://www.dgb.de/erstermai2018

- MOPO: http://bit.ly/2re5E5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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