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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Oct 19. 2018

'죽여버린다'는 말의 무게

꿈 많던 20대 청년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20대 초반, 모델을 꿈꾸던 한 청년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PC방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사건이 있기 하루 전날에는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만나 데이트를 하고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다음 날 오전 7시 쯤, '같이 있는 것 만으로도 즐거웠다. 사랑한다.'는 카톡을 여자 친구에게 보냈고, 30분 뒤인 7시 30분에 손님 둘이 찾아와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매니저에게 보고를 하고 경찰을 불렀다. 경찰은 시비를 건 손님 둘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이야기를 좀 하는 듯 하더니 자리를 떠났다. 그로부터 10여분 뒤 알바생은 그 손님에게 온 몸과 얼굴을 칼에 30여 차례 찔려 쓰러진다. 피해자는 병원에 후송되었으나 3시간 쯤 지난 오전 11시 경, 병원에서 사망한다. 

가해자들을 잠시만이라도 경찰서에 데려가 진정시켜야 되었던게 아니냐며, 피해자의 아버지는 울분을 토한다.


사건은 피해자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들어오는 길, PC방 입구 앞의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벌어졌다. 인적이 드문 아침 시간,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에스컬레이터 앞. 

하지만 피해자의 가족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흉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모델을 꿈 꿀 만큼 훤칠한 187cm의 키에 검도 유단자이기 까지 한 아들이 어쩌면 그렇게 반항도 못하고 잔인하게 살해 당해야만 했던 걸까. 

너덜너덜하게 찢겨져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양 손이 찢겨져 있었다는 말에 피해자가 흉기를 맨 손으로 붙잡으며 얼마나 저항하려 애썼는지 상상이 가 마음이 더 아려왔다.



현장에 있던 사람은 셋. 피해자는 사망하고, 가해자는 체포되었으나, 가해자의 동생은 무죄로 풀려났다. 하지만 모든 것을 목격했던 여성 알바생은 왜 가해자의 동생이 무죄로 풀려났는지 경찰에게 되물었다고 한다. 공범이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CCTV가 공개되었다. 경찰은 가해자의 동생이 가해자를 말리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은 오히려 범행을 돕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한다. 동료 여성 알바생은 풀려난 가해자의 동생이 무서워서 숨어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영상은 검색을 하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진실을 알고 싶어서 떨리는 마음으로 재생을 눌렀지만, 이내 몇 초 지나지 않아 정지를 눌렀다. 나는 잔인한 영화도 못보는 사람이다.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가해자의 가족들은 가해자가 몇 년 동안 우울증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고 한다. 또... 또 심신미약자로 형벌이 감형되는 것은 아닌지. 보다 못해 분통이 터진 제3자가 청와대에 국민 청원을 올렸다. 피해자의 가족도 아니고, 그냥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도 분통이 터져서 청원을 올렸다. 동의를 하고 왔다. 이 시간 기준 4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미 청원에 동의했다. 기준치를 훨씬 넘어섰으니 조만간 정부의 대답이 있을 것이다. 




분명 가해자는 피해자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을 했는데, 1차 출동할 당시에는 흉기나 특별한 정황이 없어 구두로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게 경찰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가해자는 경찰이 돌아간 것을 확인한 후에 집에 가서 흉기를 가져와 피해자를 찔러서 살해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의 말의 무게가 얼마나 가벼운지 말이다. 가해자는 말만으로 협박했기 때문에 경찰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언어 문화에서는 '죽고 싶냐', '죽을래?' 라는 말의 무게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편이다. 친구들끼리 연인들끼리 장난을 치면서도 쉽게 나오는 말이다. 잠시 영어를 생각해 봤다. 우리나라의 어감처럼 장난스러운 상황으로라도 'Wanna die?' 라고 하는 상황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죽여버린다'는 협박성 말에 대한 대응도 아마 우리와는 다르리라. 



오늘 이 사건으로 그 말의 무게가 완전히 바뀌어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니 바뀌어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이미 그런 사회였다면, 저 청년은 조금 더 일찍 보호받을 수 있었을까.

죽지 않을 수 있었을까. 



왜 저런 사람들이 우울증 환자라는 이유로 감형을 받아야 하는 걸까. 일반적인 상황에서 저런 행동을 저지르는 사람이 정상이 아닌 게 당연한 일이다. '심각한' 정신병이 없는 사람이 저런 일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저런 잔인한 살인범을 우울증 환자라고 해서 감형을 한다면 그건 평범한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모독하는 일은 아닐까. 이번엔 제발 피해자가 억울하지 않을 합당한 처벌이 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 모두에게 내려지기를.




이제 그만 정리하고 나가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이미 늦었는데, 오늘은 수업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너무 가슴이 아픈 일인데, 인터넷에는 자극적인 사진과 영상을 동원한 글들이 많았습니다. 아니면 감정적 요소를 제외해야 하는 뉴스들이 대부분이었지요. 그래서 사진과 영상 없이 글만으로 이 소식을 많은 분들께 알리고, 피해자와 유가족들과 그리고 그 상황을 보고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목격자들, 모든 분들을 위로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혹시 청원에 동참하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링크 공유합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408609?navigation=best-petitions#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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