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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y 12. 2020

제발, 마음 가는 대로 하기 바란다

아티스트 웨이 11주차를 읽다가 눈물이 났다




아티스트 웨이 11주차 본문 앞부분을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동요했다. 위로를 받은 것도 같고, 속마음을 들킨 것도 같고, 작가가 내 삶을 지켜보고 있는 것도 같았다. 글을 쓰지 않는 것보다 글을 쓰는 것이 행복하다면 제발, 그러길 바란다는 작가의 말에서 눈물이 핑 돌더니, 지금도 울컥 울컥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잔잔히 고여있다.


지난 주 10주차 과정을 진행하며 어렴풋하게 느꼈던 것, 그러니까 내가 내 안의 자아를 돌보지 못해서 다른 쪽으로 불만이 터져나온다는 것을 11주차에서 확실히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너무 와닿아서 하나를 콕 찝기도 어려웠지만, 눈물샘이 터지게 한 문장이 있어 공유한다.







"당신이 만약 글을 쓰지 않는 것보다 쓰는 것이,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보다 그리는 것이, 노래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연기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감독 일을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면, 제발(나의 본심이다) 마음 가는대로 하기 바란다."





'제발(나의 본심이다)' 부분을 눈에 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여파는 책을 덮고도 끝나지 않았다. 잘 준비를 하려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침대를 정돈하면서도 자꾸 울먹울먹 눈물이 차오르려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제 나 좀 그만 괴롭혀'라고 혼잣말이 튀어나오면서 왈칵 눈물이 났다. 지난 주가 좀 힘들긴 했어도 주말에 푹 쉬고 오늘도 나름대로 멘탈을 잘 챙기고 해야할 일을 다 잘하고 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그냥 내 손으로 내 안의 아티스트를 독방에 가두어 두고 밖에서 문을 걸어잠그는 행위와 다름 없었구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런 방식을 선택한 것일까? 조심스레 공부가 힘들다는 내색을 했을 때, 힘든 건 당연하다고 했던 과외 선생님의 말도 틀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왜 남들처럼 열몇시간씩 공부하지 못하는 거냐고, 아니 네시간만 해도 이렇게 피곤해하는 거냐고 스스로를 다그치기만 했다.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나를 계속 남들과 비교했다. 내가 나를 나로 봐주지 못한 채. 내 선택에 대해 후회하고 내 노력에 대해 후회했다. 정말 바보같이. 



그동안 독일에는 있고 싶은데, 독일에 있기 위해서 해야하는 일은 사실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는 아이러니함을 명쾌하게 해결하지 못한 채 3년을 지내왔었다. 스스로도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라는 자책을 하기도 하고, 하나에 올인해도 모자랄 판에 이것저것 다하겠다고 덤비면서 제자리 걸음만 하는 내가 답답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이유를 알겠다. 진정한 아티스트로서의 나를 위해서는 독일에서 사는 것이 더 잘 맞고, 내 자아도 그것을 원한다. 하지만 독일에 더 오래 있을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 해야하는 일이(독일어 시험 준비) 지금까지 기껏 쌓아올린 내 창조성을 다시 산산히 부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허락하고 있었다.



독일어 공부가 아예 재미가 없다거나 무조건 의무적으로 하는 건 또 아니다. 독일어 공부 자체는 재밌지만, 독일어 '시험'이라는 틀에 맞춰야 하는 이 트레이닝이 아티스트로서의 나를 너무 괴롭게 만드는 것일 뿐.



지난 3년 동안 그냥 어학원 꾸준히 다닐 걸, 하는 후회는 경기가 다 끝나서 '질 줄 알았어~ 이길 줄 알았어~' 평가하는 행위랑 다를 게 없다. 나는 애초에 독일에서 오래 살기를 바라고 온 것이 아니었고, 또 그렇게 남들 한다는 준비 똑같이 맞춰가면서 살려고 온 게 아니었으니 그렇게 하지 않았던 내 선택은 나를 위해선 너무나 옳은 선택이었다. 그런데 그걸 후회했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참 웃겼다. 




계획대로라면 11시 전에 잠들어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 터져나오는 가장 솔직한 내 모습을 고스란히 남겨두어야만 했다. 그런 날이 있었던가, 하고 잊어버리지 않게, 잊어버리더라도 다시 볼 수 있게 내가 가장 사랑하는 글로 남겨두어야만 편하게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안하다고, 지금까지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그동안 괜찮게 지내서 계속 괜찮은 줄 알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내가 나를 끌어안고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앞으로 공부를 얼마나 해야하든 상관없이, 반드시 '내 안의 나'를 위한 창조적인 시간을 갖겠노라고 내 자신과 약속했다.




"내일부터는 하루에 한 시간, 꼭, 재밌게 놀아줄게."




변명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이 약속에는 돈도 걸지 않을 것이고, 벌칙도 걸지 않을 것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나를 위한 시간을 내지 못하는 건, 내 자신에게 하는 가장 큰 거짓말이라는 걸 나는 안다. 나를 위해 하루에 단 한 시간도 만들 수 없다면, 그건 내가 지금 내 삶을 살고 있는게 아니라 남의 삶을 살아주고 있다는 반증일 뿐이니까. 그리고 이 시간은 '소비가 아닌 창조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인스타그램을 보거나 유튜브를 보는 것, 넷플릭스를 보는 것 모두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지만 소비를 하느냐 그 속에서 창조를 하느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그러니 나는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든, 노래를 부르든, 춤을 추든, 영상을 만들든 소비하는 시간이 아닌 창조하는 시간을 한 시간씩 가져보려 한다. 







ps. 이 글이 끝나가는 지금은 어느 새 눈물은 멈추고 입꼬리가 올라가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유를 모른 채 우울하고 무기력한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면, 나의 것을 창조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무엇이 되었든 상관없고, 잘 할 필요도 없고, 어디 내보일 필요도 없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소비에 치중된 삶을 보내고 있다. 남들이 만든 것을 보고, 듣고, 읽고, 아니면 대신 만들어 주는 삶. 그 삶이 지치게 느껴진다면 이제 당신의 것을 만들 때라는 신호라고 생각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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